서건창(25ㆍ넥센)은 한 마디로 짜증나는 선수였다. 타석에 바짝 붙어 몸쪽 공을 피하지 않으니, 사구를 허용한 투수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모 구단 베테랑 선발 투수의 말을 빌려 보자. “타석에 붙는 건 문제 없다 치자. 그런데 타격 전 다리를 드는 순간 그 다리가 홈플레이트 근처까지 온다. 즉, 타석 밖에서 맞았다는 얘기다. 이건 사구가 아니다.”
통산 350경기 이상을 소화한 이 선수는 얼핏 심판 판정을 문제 삼는 것 같았다. “이러면 투수들이 던질 공이 없지 않느냐”고 한 두 번 목소리를 높인 게 아니었다. 그러나 결국은 “서건창이 그래선 안 된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출루를 위한 ‘꼼수’아니냐는 것이다.
지난해 서건창은 적어도 그런 이미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조종규 당시 심판위원장이 “바짝 붙는 타격은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입장을 밝히며 일단락되긴 했지만, 여전히 타 구단 투수들은 으르렁대기 바빴다. 머리 쪽으로 공이 날아가도, 공에 맞아 뼈가 부러져도 “내게는 책임이 없다”는 엄포마저 곳곳에서 들렸다.
하지만 올해 서건창에 대한 시선은 180도 달라졌다.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 0순위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마치 클레이튼 커쇼(LA 다저스), 오승환(한신)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 대변신이다. 이들은 나란히 다리를 한 번 멈췄다 내뻗으면서 이중 동작 논란에 시달렸다. 타자의 타이밍을 뺏기 위한 ‘꼼수’라는 볼멘 소리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실력으로 모든 악재를 뚫어 낸 미일 리그 최고의 투수들이다.
서건창은 13일 광주 KIA전 두 번째 타석에서 197개째 안타를 때려내 한 시즌 역대 최다 안타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 부문 2위이자 최다 안타왕 3연패를 노리는 손아섭(168개ㆍ롯데) 보다 월등히 많은 개수다. 아울러 129득점은 한국 프로야구 신기록, 타율마저도 3할7푼3리로 1위가 유력하다. 모든 야구인들은 서건창이 200안타 고지에 올라 프로야구 역사를 새롭게 써주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가능성은 상당하다. 평범한 1번 타자가 아닌 서건창이라면 충분히 업적을 남길 수 있다. 그는 기본적으로 빠른 발을 이용해 안타를 생산하는 타자가 아니다. 197개의 안타 중 내야 안타는 19개, 나머지 178개는 모두 외야로 뻗어간 안타다. 타격 폼 변경에다 경험이 쌓이면서 방망이 중심에 공을 맞히는 능력이 탁월해 졌다. 압도적인 리그 1위 2루타(39개), 3루타(17개) 개수가 이를 증명한다(물론 애매한 타구가 나올 경우 내야안타로 200안타를 넘을 수도 있다).
지난해 최다 안타왕 손아섭의 기록과 비교해도 서건창의 위대함은 잘 드러난다. 손아섭은 172개의 안타 중 내야안타가 30개였다. 2루타는 25개, 3루타는 3개였다. 타순, 구장, 컨디션, 리그 전체적인 투수의 수준 등 여러 변수를 고려해야겠지만 올해 서건창이 작년 손아섭의 성적을 훌쩍 뛰어넘은 건 분명해 보인다. 손아섭도 “서건창은 정말 무서운 타자가 됐다. 내년에 제대로 경쟁해 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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