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프로입니다. 프로는 항상 당대의 사조에서 벗어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내가 오랜 시간이 흘러 주목 받은 것도 당대의 흐름을 좇지 않은 ‘오리지날’이기 때문입니다.”
주류 흐름과 다른 작품을 만들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그것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은 82세의 노작가는 자신이 발휘해 온 도전정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반(反)’의 예술가 이승택(82)의 개인전 ‘거꾸로’가 서울 삼청동 갤러리현대 신관에서 열리고 있다. 2012년 성곡미술관에서 그의 작품들을 대거 전시한 이후 2년 만에 다시 여는 개인전이다. 2년 전보다 규모는 작지만 그의 작품세계는 더욱 압축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전시장 1층에는 자신이 실제로 누워 자던 매트리스에 ‘나는 세상을 꺼꾸로 보았다 꺼꾸로 생각했다 꺼꾸로 살았다’라는 글귀를 적고, 그 위에 자각상(自刻像)을 거꾸로 매달아 놓았다. 그가 지금까지 추구해온 ‘안티-아트’의 정체성을 표현한 설치작품이다.
1932년 함경남도 고원군에서 태어난 이승택은 어려서부터 조각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한국전쟁 때 남한으로 내려온 후 대학을 다니면서 니체의 철학에 심취했다. 이는 그의 ‘거꾸로’ 예술의 사상적 기반이 됐다. 그는 늘 전통적인 조각과는 다른 새로운 소재와 기법을 활용하고 상식과 편견을 돌파하려 애썼다.
1960년대 들어서는 아예 ‘형체 없는 작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영화관에서 우연히 본 화재 현장을 담은 영상에 착안해 불, 물, 바람 등 형체 없는 자연 현상을 소재로 활용했다. 이것이 수많은 퍼포먼스 작품으로 이어졌다. ‘바람’ 시리즈 등 그의 퍼포먼스를 기록한 사진과 영상들은 전시장 지하 1층에서 볼 수 있다.
이승택은 자신의 작품을 세상과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단 한 작품도 팔리지 않았고 자신도 작품을 팔 수 있으리라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생계는 전형적인 초상조각을 하며 이어갔다. 놀랍게도 인천 자유공원에 있는 더글러스 맥아더 동상도 그의 작품이다. 하지만 그는 ‘생업’과 자신의 작품을 철저히 분리해 생각했다. “그런 조각을 하면서 살았으니 (미술계) 윗사람들의 눈치를 볼 일이 없었고 내 생각대로 작품을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작품이 국제적으로 조명되기 시작한 것은 2009년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을 수상하면서부터다. 해외 큐레이터들은 미술사적인 관점에서 그의 작품을 높게 평가한다. 현대미술의 후발주자로만 여겼던 아시아에서 1960년대부터 독자적으로 실험미술을 개척해 나간 작가가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에겐 놀랍게 받아들여진 것이다.
뒤늦게나마 미적 성취를 인정받았으니 이제는 만족할 만 하건만, 그의 과감한 실험은 끝나지 않았다. 이번 전시에서 공개한 2014년작 ‘삐라’는 보수 시민단체가 휴전선 근처에서 열기구를 띄워 북한에 삐라를 살포하는 행위를 패러디한 퍼포먼스 작품이다. 최근 삐라 살포를 두고 마찰이 이어지는 상황을 생각하면 대담한 소재 선택이다.
보수단체들이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형태의 열기구를 3개 마련해 그 위에 각각 영문으로 ‘노 워(전쟁 반대)’, 한자로 ‘자유ㆍ인권ㆍ평화’, 한글로 ‘핵무기를 폐기하라’고 적었다. 굳이 영문과 한자를 사용하고 달러화와 위안화 뭉치를 열기구에 매단 것은 미국-중국 양강구도 하에 움직이는 한반도 주변의 국제정치적 현실을 포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들 열기구 중 2개는 영국 프리즈 조각공원의 초청을 받아 현지로 보내졌으며 한국 전시장에는 한글을 쓴 열기구 1개만 전시돼 있다. 이번 전시는 11월 9일까지 이어진다.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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