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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최고경영자의 질문

입력
2014.10.12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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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하나를 팔려면 그 나라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속속들이 꿰고 있어야 한다.” 2007년 와인 잔 모양의 보르도 LCD TV로 유럽시장을 석권한 삼성전자 헝가리 공장을 방문했을 때 현지 법인장은 박식했다. 896년 마자르족의 족장 아르파트의 지도 아래 현 위치에 정착한 역사부터 21세기 집권 사회당 등 여야 정치권의 지형까지 헝가리의 모든 것을 한편의 다큐멘터리로 풀어냈다. 기업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 ‘입체적 사고’를 강조한 이건희 회장의 경영철학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 1993년 신경영을 제창해 전국체전 1등 정도였던 삼성을 올림픽 챔피언 기업으로 키워낸 이 회장은 관심사의 폭이 남달랐다. 질문은 경영 현안을 넘어서기 일쑤였고, 난해하면서도 예사롭지 않아 늘 임직원을 긴장시켰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중국이 G2로 올라서자 “역사적으로 중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했을 때 주변국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이명박 정부에서 한일관계가 나빠졌을 땐 “임진왜란 당시 조선과 일본의 국민총생산(GNP) 차이는 어느 정도였나”등의 질문이 대표적이다. 늘 간단치 않은 숙제를 안게 된 삼성경제연구소 박사들은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싸구려 취급을 받던 브랜드를 품질경영을 내세워 10여년 만에 글로벌 빅5로 올려놓은 승부사다. 그는 지난해 “뚜렷한 역사관을 갖고 차를 판다면 이는 대한민국의 문화도 같이 파는 것이고,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의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졸 공채에 역사에세이 과목을 도입한 계기다. 지난 9일 실시된 올해 공채에선 정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두 가지 질문이 주어졌다. ‘몽골 및 로마제국에서 현대차가 글로벌화와 지속성장을 위해 배워야 할 점, 생전 잘 알려지지 않았다가 사후에 재평가된 신사임당처럼 역사상 저평가된 인물을 논하라’는 주문이었다.

▦ 삼성과 현대차가 글로벌 기업이 된 건 여러 요인이 꼽히지만, 공통적 비결은 최고경영자의 웅대한 포부에 있다. 단순히 인문학적 관심을 넘어 임직원에게 세계를 아우르는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세계에서 찾도록 했기 때문이다. 결국 최고경영자의 질문의 크기가 기업의 크기를 결정한다. 이들 기업을 이어 받을 3세들이나, 글로벌 기업을 꿈꾸는 다른 기업들이 잊지 말아야 할 포인트다.

박진용 논설위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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