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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 등 32명 앗아간 사고… 이어진 판박이 참사, 20년 세월이 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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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 등 32명 앗아간 사고… 이어진 판박이 참사, 20년 세월이 무색하다

입력
2014.10.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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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 없는 성장 재확인만"

‘다리가 무너질 수도 있다.’

성수대교 붕괴사고가 국민의 뇌리를 때린 충격은 이것이다. 사고는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40분께 일어났다. 출근길 직장인, 등굣길 학생들이 탄 차가 쉴새 없이 지나던 시간이었다.

성수대교 5, 6번 교각 사이 상부 골조 구조물인 트러스가 주저 앉았다. 이 지점을 달리던 경찰 승합차 1대와 승용차 2대가 트러스와 함께 떨어졌다. 붕괴 경계에 걸쳐있던 승용차 2대는 물 속에 빠졌다. 16번 서울 시내버스 역시 경계선을 달리다 떨어지면서 뒤집혀 추락했다. 떨어진 차량 6대에 타고 있던 시민은 49명. 이 중 32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중에는 강을 건너 등교하던 무학여중ㆍ고 학생 9명이 포함돼있었다.

국민이 더욱 크게 분노한 건, 사고가 인재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미 1년 6개월 전 성수대교를 시급히 보수해야 한다는 보고가 있었지만 서울시 윗선은 묵살했다.

게다가 동아건설이 시공할 당시부터 부실하게 지어졌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다리 상판을 떠받치는 트러스 수직재의 용접부위가 불량해 차량의 하중을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박형주 가천대 교수(건축공학)는 “시설물 붕괴 재난의 본격적인 효시 격인 사고”라며 “시공할 때 잘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지관리, 보수도 철저히 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사회적으로는 산업화의 폐단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됐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영미문화학부)는 “성장 위주의 건설 속도전이 만든 ‘한강의 기적’이 실은 허상이었다는 것을 증명한 중대 사건”이라고 진단했다.

성수대교 붕괴 이후 온갖 재난이 이어졌다. 이듬해 대구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 사고(4월 28일)와 삼풍백화점 붕괴(6월 29일)가, 이후로도 씨랜드 화재 참사(1999년 6월 30일),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2003년 2월 18일) 등이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돌이켜보면, 당시 잇단 사고에도 우리 사회는 그리고 정부는 배운 게 없었다. 판박이 같은 인재가 되풀이 됐지만, 재발을 막는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조치는 늘 구호에 그쳤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는 “정부가 치유와 복구, 재발 방지를 하기보다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거나, 얼른 사고가 국민 뇌리에서 잊히는 사회적 망각 만을 바라온 듯 하다”고 말했다.

그 대가는 지금도 치르고 있다. 올해 역시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2월 17일), 세월호 침몰 참사(4월 16일)가 났고 국가의 신뢰도 함께 추락했다.

이택광 교수는 “우리 사회가 이룬 성장이 알맹이 없는 겉치레에 지나지 않았다는 재확인의 연속이었다”며 “동시에 정부에 대한 반감, 국가에 대한 불신, 역사에 대한 허무주의를 강화하는 결과도 낳았다”고 말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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