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캔델 지음ㆍ이한음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발행ㆍ772쪽ㆍ3만원
고혹적인 아름다움이 가득한 ‘아델레 블로흐바우어Ⅰ’는 대중이 좋아하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 중 하나다. 블로흐바우어의 옷깃과 아우라를, 클림트는 도형을 삽입한 작은 조각들로 화려하게 표현했다. 그런데 이 눈부신 장식 속에는 클림트만의 생물학적 상징이 숨어있다. 각지고 둥근 도형이 바로 정자와 난자를 뜻하는 이미지인 것이다. 생물학자 찰스 다윈의 책을 읽은 클림트가 세포의 구조에 매료된 까닭이다. 클림트는 블로흐바우어의 매력을 번식 능력을 상징하는 정자, 난자와 연관 지어 그렸다.
200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에릭 캔델은 ‘통찰의 시대’에서 이 그림을 두고 “과거의 미술과 결별했을 뿐만 아니라 현대 과학, 특히 현대 생물학이 클림트의 미술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 책은 캔델 자신이 설명하듯 오스트리아 모더니즘 예술과 정신분석, 예술사에 대한 그의 관심과 그가 평생 공부한 학문인 뇌과학을 종합한 결과물이다.
캔델이 보기에 뇌과학과 미술은 관점만 다를 뿐 마음을 들여다 보는 방식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뇌영상으로 우울증을 일으키는 신경 징후를 알 수 있고 베토벤의 교향곡을 통해서는 우울하다는 게 어떤 감정인지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화가 오스카어 코코슈카도 자신이 그린 초상화들에서 정신분석적인 통찰을 드러냈다. 캔델은 “코코슈카는 미술에서 진리는 내면의 현실을 보는 데 달려있다고 믿고 그림을 그렸다”며 “그는 자신을 ‘심리학적 깡통따개’라고 했다”고 적었다.
그런 그림 중 하나가 1910년 코코슈카가 그린 ‘루돌프 블륌너’다. 이 초상화에서 그는 신체 부위로 깊은 불안과 공포를 표현했다. 말을 하며 움직이는 손은 매우 역동적이고 강렬하게 그렸고, 눈동자는 캔버스 바깥을 향한다.
캔델은 “초기 초상화는 대부분 반신 초상화로 대개 손 바로 위까지만 그렸지만, 코코슈카는 ‘대화하는 손’을 강조했고 한쪽을 더 크게 그린 눈은 마치 내면의 자아에 몰두하고 있는 듯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얼굴의 생김새를 표현한 붉은 선은 정맥, 동맥을 상징한다고 캔델은 해석했다.
캔델은 이처럼 1900년 ‘세기말 빈’에서 과학과 예술이 어떻게 교류하며 서로를 진보시켰는지 200여 점의 그림과 함께 설명해나간다.
캔델은 “예술, 마음, 뇌를 연관 짓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서 ‘빈 1900’에서 싹튼 두 분야의 대화를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계속 이어가는 일을 어떻게 하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이 흥미로운 책을 쓴 이유를 밝혔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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