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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기 훈련 때 누구는 서류 정리… 전우애 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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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기 훈련 때 누구는 서류 정리… 전우애 금간다

입력
2014.10.1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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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과 업무 연관성… 대다수 예비역 "관련 없다"

병영 불평등 해소 목소리… "군대니까 참아라 이젠 안 돼"

군대마저 성적순으로 차별화하면서 훈련소에서 나눈 전우애에도 균열이 생기고 있다. 지난 8월 강원 춘천시 102보충대에서 입영 장병들이 뒤로 돌아 부모를 향해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군대마저 성적순으로 차별화하면서 훈련소에서 나눈 전우애에도 균열이 생기고 있다. 지난 8월 강원 춘천시 102보충대에서 입영 장병들이 뒤로 돌아 부모를 향해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군복을 입으면 모두 똑같아진다고 한다. 이름이 아니라 번호로 불리는 훈련소에서 빡빡 민 머리에 같은 군복을 입고 서 있으면 전우들과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동질감에 균열이 가는 순간이 오게 마련이다. 누구는 행정병으로, 누구는 소총수로 보직이 결정되면 씁쓸한 마음을 감추기 어렵다. 거꾸로 돌려 놓아도 간다는 국방부 시계라지만 앉아서 서류를 정리하는 행정병과 칼바람에 떨고 있는 초병의 시간은 분명 다르다.

이 같은 군대불평등 문제를 야기하는 데도 학벌은 큰 원인으로 작용한다. 서울 Y대에 재학중인 김모(24)씨는 2011년 강원도 한 부대에서 소총수로 배치됐다. 그런데 입대 5개월이 되자 갑자기 대대 지휘통제실 행정병으로 차출됐다. 예고 없는 조치에 어리둥절해 했지만 먼저 와 있던 행정병 5명의 학력을 파악한 뒤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5명 모두 S대 등 서울 소재 대학에 재학 중이었다. 김씨는 행정병으로 일하면서 훈련과 일과 뒤 작업에서 언제나 열외였고, 혹한기 훈련을 나가도 간부 장교들을 챙기느라 따뜻한 지휘소를 떠나지 않았다. 김씨는 “제대를 앞두고 후임을 정할 때도 학벌이 기준이 됐다”며 “부대원 500여명 중 서울 K대 출신 병사가 뽑혔다”고 말했다.

서울 한 사립대를 졸업한 안모(28)씨는 의무경찰로 복무할 당시 학벌 덕을 톡톡히 봤다. 경찰서에 배치 받은 순간 서장이 타는 ‘1호차’를 운전하게 된 것. 갓 들어온 이경이었지만 서장과 연락을 위해 휴대폰을 사용했고, 머리도 기르며 사복을 입고 근무했다. 입대 동기 의경들이 집회ㆍ시위 현장에서 땀 흘릴 때 그는 한가로이 인터넷을 할 때가 많았다. 그 역시 ‘꿀보직’으로 통하는 서장 운전병을 맡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중대원 80여명 중 학벌로 치면 단연 그가 최고였기 때문이다.

좋은 학벌을 가졌다고 몸이 편한 부대나 보직에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서울대 출신도 전방부대 GOP(일반전초)에서 철책 근무를 서고, 고졸 출신이 행정병을 맡기도 한다. 누구나 편한 보직, 편한 근무지를 원하지만‘군대는 줄을 잘 서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처럼 개인의 운, 외부 영향력 역시 군생활에 크게 작용한다. 하지만 최소한 학벌이 편하고 안전한 근무의 가능성을 높인다는 지적에 대다수 군인과 예비역들은 공감한다. 더구나 좋은 학벌이 그런 보직에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다’에 가깝다. 대대장 CP병(당번병)으로 근무한 서울 소재 사립대 졸업생 권모(29)씨는 “커피를 타고 대대장의 전투화를 얼굴이 비치도록 닦았던 기억이 군생활의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대대 지휘통제실 행정병 출신의 김씨도 “전화를 받고 단순한 문서를 만드는 정도여서 일의 만족도는 전반적으로 낮았다”고 말했다.

몸이 편하면 정신이 고된 이치처럼 긴 시간을 놓고 보면 편한 보직, 편한 군대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충고도 없지 않다. 예비역 대장인 A씨는 “군생활이 홀로서기할 수 있는 남자로 변신할 시간”이라며 “세상의 난관을 극복할 자신감, 위기 대처능력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입대 전 쓸데 없는 고민들을 하는데 편한 보직, 편한 군대란 없다”면서 “고생스런 복무기간에 얻는 무형의 가치들은 인생 전체로 봤을 때 손해가 아니다”고 충고했다. 양봉희 상명대 군사학과 교수도 “행정이나 철책 근무 모두 장단점이 있다”면서 “몸이 편하면 정신적으로 힘들고, 정신적 스트레스가 없으면 몸이 힘들게 마련이다”고 했다.

그러나 군대불평등의 현실과 문제점을 인정하고, 힘들고 위험한 역할을 책임진 병사를 배려하는 방안이 논의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대표적인 게 정신적, 육체적 피로도가 큰 GOP 등 격오지 근무자에 대한 복무기간 단축이다.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GOP 근무자들의 온라인 학점이수 비율은 2%로 일반 부대의 13분의 1에 불과하다. 열악한 근무환경과 미비한 학습시설로 다른 부대만큼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 GOP에서 수류탄을 투척해 동료 5명을 희생시킨 임병장 사건 이후 군은 주말면회 허용, 의무병 배치 등을 개선안으로 내놨지만 GOP 근무를 기피하는 장병들에게는 여전히 미봉책일 뿐이다. 의무경찰 입대를 앞둔 김종빈(20)씨는 “전방에 배치되면 힘든 시간을 보낼 것이란 생각 끝에 의경에 지원했다”고 전방배치의 두려움이 육군기피의 이유임을 인정했다.

이에 따라 국회에서는 2005년 530 GP(휴전선 감시초소) 총기사건 때 제기된 전방부대 복무기간 단축 문제가 다시 거론되고 있다. 다만, 복무기간 단축은 형평성에 어긋나 현실성이 떨어지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징병제가 지닌 군대 불평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모병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끌려 가는 군대가 아닌 군을 직업으로 선택한 이들로 구성된 군대가 군 전체의 효율성과 사기를 올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목 국방관리대학원 교수는 “현실이 된 군대불평등 문제는 더 이상 ‘군대니까 조금만 참아라’라는 식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워졌다”면서 “우선은 병사와 장교 모두 서로 인간적으로 대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준호기자 junho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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