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은 군입대와 군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국일보가 서울과 지방 대학의 예비역을 조사한 결과, 학벌은 편한 군대와 좋은 보직을 좌우하는 변수로 나타났다. 오픈서베이를 이용한 조사는 25세 이상 35세 이하 서울소재 주요 10개 대학(▶ 설문 결과 보기)과 지방소재 10개 대학(▶ 설문 결과 보기)의 예비역 100명 씩을 대상으로 했다.
서울과 지방 대학생은 군복무 형태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육군 복무비율이 서울 소재 대학 출신은 52%인 반면 지방대학 출신은 20% 포인트 더 높은 72%였다. 안전한 군대로 인기를 끄는 해군, 공군 역시 서울 출신은 26%인 반면, 지방 출신은 11%로 두 배 이상 차이가 났다. 서울 소재 대학 학생들이 지방대 학생에 비해 육군으로 가기보다 해군이나 공군으로 가는 비중이 높은 것은 고교 성적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원병제인 해ㆍ공군은 고교 내신이나 수능 성적이 선발을 좌우한다.
군에 들어가서도 학벌은 군생활 2년을 좌우하는 보직 결정에 큰 영향을 주었다. 서울 소재 대학 출신은 34.5%만이 ‘전투ㆍ출동 등 야외활동이 주된 보직’을 담당했으나 지방 출신은 절반이 넘는 58.2%가 이런 보직을 맡았다. 상대적으로 편한 보직으로 알려진 ‘행정 관련 보직’의 경우 서울 출신은 39.1%, 지방 출신은 26.4%에게 부여된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 소재 대학 출신이 책상에 앉아 병역의무를 수행할 때 지방대 출신은 야외에서 땀 흘리며 몸을 쓰는 병역 의무를 할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군대 내 불평등 문제에 대해선 서울이나 지방 소재 대학 출신 모두 공감하고 있었다. 군의 보직 또는 근무지 배정에 대한 학벌 영향을 묻는 질문에는 전체 응답자의 과반수가 넘는 60.7%가 ‘그렇다’고 답했다. 지방대 출신(51.6%)에 비해 서울 소재 대학 출신(70.1%)이 ‘좋은 학벌 = 편한 보직’이라는 생각이 더 강했다. 군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묻는 질문에는 ‘외박 등 휴가’라는 답변이 서울 47.1%, 지방 38.5%로 가장 많았다. 또 ‘자기계발’(20.8%)보다 ‘가혹행위 없는 내무생활’(29.2%)이 더 중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더 높았다. 병역 기간을‘안전’하게 보내는 것을 가장 중시한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조사에서 학벌에 이어 ‘운’과 ‘뒤에서 받쳐주는 세력’이 보직이나 근무지를 결정하는 2,3위 변수로 꼽혔다. 군대는 여전히 적성보다 불확실한 외부 환경과 개인적 배경이 중요한 특수 공간인 셈이다. 군은 훈련소 성적이 보직 결정의 잣대라고 밝히고 있으나 이를 믿는 응답자 비율은 서울 소재 대학 출신은 26.4%, 지방대 출신은 8.8%에 불과했다.
정준호기자 junho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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