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해군 지원자들 급증… 수능성적이 절대적 잣대
in 서울 기준 2등급 돼야… 군대까지 서열화·학벌화
D-33. 고교 3년생의 대학입시인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1일로 한달 여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남학생이라면 수능을 잘 봐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원하는 대학과 함께, 원하는 군대에 가기 위해서다. 상대적으로 선호되는 군대 관문을 통과하는 데도 수능 성적이 잣대로 작용한다. 윤 일병 집단구타 사망사건 충격 이후 안전한 군대에 가려는 ‘입대전쟁’에서 수능학벌은 중요하다.
한국 남성이라면 때가 되면 가야 하는 군대. 21~24개월 의무복무 기간을 조금이라도 ‘편하고 안전하게’ 보내기 위한 경쟁은 뜨겁다. 자사고 군대, 특목고 군대로 불리는 공군, 해군, 의무경찰, 의무소방, 카투사, 통역병 등 지원병이 대상이다. 사건ㆍ사고가 많은 육군 기피와 성적으로 뽑는 군 선발기준이 이런 현상을 부추기면서, 군대 서열화ㆍ학벌화까지 초래하고 있다. 군대가 더는 ‘8도 사나이’들의 집합소가 아닌 곳이 되고 있다.
서울 소재 전문대에 다니는 박성진(22)씨는 2012년 역시 고교 내신이나 수능성적으로 선발하는 해군과 공군에 지원했다 모두 떨어졌다. 내신성적이 100명 중 23등인 2.9등급으로 나쁘지 않았으나, 복학이 편리한 2월 입대자 선발에 성적 우수 지원자들이 대거 몰린 때문이다. 홧김에 해병대에 입대했다가 최근 제대한 박씨는 “직업군인도 아니고 의무복무를 위해 선택한 군대를 성적 때문에 못 갔다는 걸 이해할 수 없다”며 “전문대 학생이라고 차별을 당한 느낌”이라고 회상했다.
본보가 모바일 설문업체 오픈서베이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육ㆍ해ㆍ공군 복무비율에서 서울과 지방 소재 대학 간 차이는 뚜렷했다. 기피되는 육군 복무율은 지방 대학생이 72%로 서울 소재 대학생의 52%보다 훨씬 많았다. 하지만 육군에 비해 잦은 외박과 합리적인 내무생활로 소문난 공군과 해군 복무에서 서울 소재 대학생이 지방 대학생보다 2.5배 이상 많았다. 공ㆍ해군이 고교 내신 또는 수능 성적을 선발 기준으로 삼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 학업을 소홀히 한 고교 남학생은 육군에 복무할 확률이 더 높은 셈이다.
군대의 학벌화는 연초 입대하는 공군 일반병의 30% 이상이 스카이(SKY)로 불리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출신으로 채워지는 데서도 목격된다. 병무청에 따르면, 작년 2월 입대한 공군 일반병 834명 가운데 281명(33%)이 3개에 재학 중이었고, 특히 서울대 생은 137명(16%)으로 가장 많았다. 공군에서는 흔한 서울대 출신을 육군에서는 보기 힘들어지는 기현상도 빚어지고 있다. 주말외출, 편안한 내무생활이 장점인 카투사나 의무소방의 상황은 이 보다 더하다. 카투사는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입대자 중 약 23%가, 의무소방은 2011년 이후 입대자의 약 17%가 3개 대학 출신이다. 육군의 전투병이 아닌 해ㆍ공군, 카투사 등 비교적 몸이 편한 지원병으로 원하는 시기에 입대하려면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뜻하는 ‘인(in) 서울’에 성공해야 안심할 수 있다.
학벌은 입대 후에도 원하는 보직과 근무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본보 조사에서 예비역 대학생 200명의 60.7%가 ‘학벌이 보직과 근무지 배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고, 이 같은 답변 비율은 서울 소재 대학생일수록 높았다. 육군 병장 출신의 군사평론가 김종대씨는 “우리사회의 성적과 학벌에 따른 서열화, 차별화가 군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군 당국은 합리적 차별이라며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공군만 해도 입대 지원율이 2010년 2.5대 1에서 올 상반기에는 6.8대 1까지 치솟아, 불가피하게 성적을 기준으로 가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윤일병 집단구타 사망사건, 임병장 총기난사 사건 이후 군 안전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서 입영을 앞둔 지원자나 부모들의 속은 타 들어 간다. 11월 13일 수능시험을 잘 치러야 하는 이유가 많아지고 있다.
정준호기자 junho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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