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을 하되 열심히 하지는 않는다. 바쁘다는 것은 핑계일 뿐 내 생활이 지지부진하여 통 올리지 못하고 있는데 페친들의 즐거운 사연이 올라올 때면 은근히 짜증이 나곤 한다. SNS를 할수록 소외감 또는 고립감을 느끼게 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그런 경우가 다른 사람 얘기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페친 중에 일본 관계 정보를 자주 올리는 일본통이 있다. 젊은 시절 다른 나라에 유학한 경우 특히 그 나라가 선진국일 경우에는 자신이 경험한 그 나라의 장점에 깊숙이 빠지게 되는데 이 친구가 유독 그렇다. 이 친구가 일본 출장이라도 갈 때면 일본의 풍경과 음식 사진들로 나의 페이스북은 도배되다시피 한다. 그가 올린 여러 사진 가운데 ‘누런 각설탕과 흰 각설탕이 함께 나오는 일본 찻집의 배려’라는 설명이 써진 사진에 특별히 눈길이 갔다. 하얀 냅킨에 싸인 노란 각설탕과 흰 각설탕이 식탁 위의 작은 바구니에 들어 있어서 앙증맞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각설탕이 아닌 둥근 설탕이 맞다. 각설탕이라 하면 문자 그대로 분말 설탕을 네모나게 굳혀 만든 설탕인데 사진 속의 설탕은 둥글게 굳힌 설탕이니 둥근 설탕 또는 원 설탕이라고 불러야 할 지 모르겠다.
최근 일본에서 개최된 학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간만에 간 일본이라 비행기 표를 최대한 이른 시간으로 하여 이곳저곳 둘러보느라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돌아다니다 저녁 무렵에야 겨우 숙소에 도착했다. 부랴부랴 씻고 대학 구내식당의 저녁 식사 모임에 도착하니 다음날부터 개최되는 학회의 발표자 및 관계자들이 거의 앉아 있었다. 대학 구내식당답지 않은 호화스런 식당 내부도 인상적이었고 격식을 갖춘 프랑스 요리도 놀라웠다. 후식으로 커피와 함께 노랗고 둥근 각설탕(?)과 희고 둥근 각설탕이 예쁜 그릇에 담겨 나왔다. 각설탕을 보자 페이스북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잠시 생각에 빠지느라 대화를 놓쳐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각설탕으로 인해 떠오른 생각은 죽 이어졌다.
학회일정을 마친 후 한국 유학생들과 우리나라에서 공부한 일본인 연구자들과의 자리가 있었다. 여러 대화 중 각설탕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와 일본 문화의 특징이 비교되었다. 일본의 정확함과 친절에 대비되는 우리의 대강 넘어가는 기질, 상대에 대한 배려 부족 등이 언급되자 여러 말들이 쏟아졌다. 우리나라에서 공부한 일본인 연구자가 말문을 열었다. “한국에서의 유학 경험은 대단히 유익했어요. 무엇보다 따뜻했어요. 일본은 철저히 개인적인데 한국에서는 끈끈한 선후배의 정이 있어 모르는 것을 알려주고 아무 조건 없이 자료를 빌려주는 등 형제처럼 여기는 태도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그러자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 여러 사람들의 호응이 컸다. 물론 한국에서의 경험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다는 사람도 있기는 했지만, 그런 것은 문화의 차이일 따름이지 그렇다고 해서 한국을 비하해서는 안된다는 속 깊은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이 방면의 대화를 먼저 시작한 나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여러모로 아직 연륜이 깊지 않은 사람들이라 우리나라 문화의 폭과 깊이를 어찌 알랴 생각했는데 그들의 눈은 한일 양국 문화의 깊은 속내까지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3의 길’이라는 단어가 유행한 적이 있다. 좌파와 우파를 적당히 섞어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그 이름의 여운은 내겐 아직 크다. 사회체제니 이념이니 하는 거창한 것을 논하려는 게 아니다. 한국과 일본으로 좁혀 보면 민족국가인 두 나라는 애국을 지상의 목표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고 있다. 자국에 대한 애국심을 제1의 길이라면 한국과 일본은 각기 1개씩의 길을 갖고 있다고 할 만하다. 한국과 일본의 두 길은 지향이 너무나 다르고 서로에 대한 이해를 위한 노력도 부족하여 결국 평행선을 달리는 느낌이다. 상대에 대한 이해를 위한 노력은 물론 자국문화에 대한 투철한 성찰을 통해 근거 없는 미화나 자기비하를 넘어서는 것이야말로 한일 두 나라에 있어 진정한 의미에서의 제3의 길이 아닐까 싶다. 사소한 경험을 통한 손쉬운 결론이라 할 수 있지만 귀국 이후에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이다.
김상엽 건국대 인문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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