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란의 기상 그려 낸 '적설만산', 서체의 완성형인 '계산무진' 등
각 나이 때의 대표작 엄선해 김정희 글씨ㆍ그림 44점 공개
모레부터 하루 500명 예약제
서울 성북동의 간송미술관은 매년 봄과 가을에 보름씩 기획전을 열어 소장품을 공개한다. 국보와 보물을 포함해 명품이 많기로 소문난 미술관이지만 이때 말고는 볼 기회가 없어 매번 관객이 미어 터지곤 한다. 개관 후 처음으로 올해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연 외부 전시가 대성황을 이룬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올 가을 간송미술관 전시의 주인공은 추사 김정희다. ‘추사정화(秋史精華)’라는 제목 아래 추사의 글씨와 그림 44점을 12~26일 공개한다.
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추사체가 완성돼 가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이다. 6~7세 나이에 천재성을 인정받은 김정희지만 추사체는 그의 말년에 완성된 서체다. 추사체 태동기인 추사의 30대 시절 글씨부터 완숙기인 68세 때 작품까지 추사체 변천 과정을 살펴 볼 수 있다. 최완수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장은 “추사체가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라며 “각 나이 때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을 엄선했다”고 설명했다.
김정희는 스승인 청나라 옹방강의 서체를 익힌 후 명나라 동기창ㆍ문징명, 원나라 조맹부, 송나라 황정견ㆍ소식, 당나라 안진경ㆍ우세남 등의 글씨를 차례로 익혔다. 또 중국 고대 상형문자부터 후한 초기 비석 등 고예체를 연구하기도 했다. 최 소장은 “30대에는 옹방강의 영향으로 서체가 중후한 맛을 보이지만, 중국 서도사(書道史)를 익힌 50대 이후에는 날카로운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후에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추사는 고예체를 토대로 전서와 팔분예서(八分隸書)를 융합해 추사체를 완성했다. 추사체는 수천년간 이어온 서체를 모두 섭렵한 뒤 완성된 작품이라는 의미다.
이번 전시회에는 추사가 36세 때 중국 서예가 옹방강의 서체를 따라 중후하게 써내린 ‘행서대련’,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그린 ‘세한도’와 ‘고사소요’, 추사의 좌우명이자 학문에 대한 자세를 담은 ‘경경위사’ 등이 나온다.
특히 추사체의 완성형이라 할 수 있는 ‘계산무진’은 높고 넓은 복잡한 글자(谿)와 낮고 단순한 글자(山), 가로 획과 점이 중첩하는 높고 넓은 글자 2개(無ㆍ盡)를 가로·세로로 배치해 뛰어난 조형성까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추사와 동시대 명필인 원교 이광사의 서예론 ‘원교필결’을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신랄하게 비판한 내용이 담긴 서첩 ‘서원교필결후’와 서첩 앞뒤에 붙어 있는 그림 ‘소림모정’도 선보인다.
추사의 난초 그림 중 대표작인 ‘적설만산’도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적설만산’은 ‘난맹첩’에 포함된 그림으로, 난을 잔디처럼 짧게 그려 우리나라 중부 지방에서 볼 수 있는 춘란의 강인한 기상을 표현한 작품이다.
최 소장은 “추사는 옛 것을 익히고 새 것을 창조하는 데에 있어 천재”라며 “옛날 것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옛 것 그대로인 것도 없는 것이 바로 추사체”라고 말했다.
간송미술관의 봄ㆍ가을 정기 전시회는 관람객들이 수백 미터 줄을 서 순서를 기다린 뒤에야 볼 수 있을 만큼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이번 정기전은 문화재 보호와 관람객 편의를 위해 하루 500명 예약제로 운영한다. 예약은 전화(070-7774-2523)나 간송미술관 홈페이지를 통해 할 수 있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