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쌈을 좋아한다. 이기고 지는 쌈이 아니라 싸 먹는 쌈. 길을 거닐다 쌈밥집이 있으면 절로 눈이 돌아간다. 배가 불러도 어쩔 수 없다. 이미 머릿속으로는 다음 번에 이 근처에 오게 되면 꼭 저기에 가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채소 잎들이 종류별로 광주리에 담겨 있는 상상을 하면 침이 고인다.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일품인 트레비소에 고슬고슬한 밥을 한 숟갈 넣고 우렁이가 들어간 쌈장을 얹어 입에 넣는 상상을 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톡 쏘는 매운맛의 청겨자와 은은한 향의 적쌈추 또한 내 오감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예전에 살던 곳 근처에는 쌈밥집이 있었다. 입맛이 없을 때면 꼭 쌈밥을 먹어야 직성이 풀리곤 했다. 쌈밥이 먹고 싶어서 입맛이 없다고 스스로를 세뇌한 적도 있는 것 같다. 처음 그 쌈밥집에 갔을 때 단골이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가지런히 놓인 채소 잎들, 정갈하게 담긴 각종 찬들, 뚝배기에서 보글보글 끓는 우렁이 쌈장 때문에 밥 한술 뜨기 전부터 내 마음은 이미 쌈 안에 포획되어 있었다. 각종 쌈의 이름을 설명해주는 주인아저씨의 어눌한 말씨, 덜그럭덜그럭 정신 없이 돌아가는 주방의 소리, 마음이 절로 편해지는 분위기 등 맛을 포함한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되었다. 단골이 되는 일은 그런 것이 아닐까. 특정 메뉴를 좋아하는 것을 뛰어넘어 그 집의 디테일 하나하나까지 마음에 담는 일, 밥을 먹는 동안만큼은 기꺼이 그 집의 식구(食口)가 되는 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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