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무책임한 복지 경쟁이 부른 부작용이 점입가경이다. 쓸 곳은 많은 데 쓸 돈이 부족하자 서로 제 주머니 돈을 못 내놓겠다며 정부, 지자체, 교육청 등 재정 주체들 사이의 갈등과 대립이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그제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결의한 교육청의 어린이집 예산편성 거부 방침만 해도 그렇다. 일단 생색부터 내고 보자는 정치권과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땜질식 재원 대책만으로 덜컥 시행을 서두른 정부의 어설픈 행정이 결국 미취학어린이 교육복지사업 전반을 불과 3년 만에 파산 위기에 빠트린 셈이 됐다.
이번에 시도교육감들이 예산을 내놓지 못하겠다고 선언한 어린이집은 정부의 만 3~5세 미취학 어린이 교육복지사업 대상인 누리과정의 일부다. 정부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유아교육법 상 무상교육 대상인 누리과정으로 묶어, 이명박 정부 말인 2012년 만 5세 어린이부터 1인당 월 22만원까지 지원했고, 지난해엔 만 3~4세까지 지원대상을 확대했다. 내년 누리과정 전체 예산은 3조9,284억원이며, 예산은 정부가 국세를 떼어 교육청에 지원하는 교육교부금(국세의 20.27%)과 해당 지자체 지원 예산에서 교육청이 집행하도록 되어 있다.
문제는 현행법 상 유치원은 교육부(교육청) 소관이고,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 소관이라는 점이다. 교육감협의회는 법적 관할을 빌미로 교육청이 보육기관인 어린이집 예산까지 낼 수 없으니 정부가 국비로 부담하라는 주장이다. 내년 어린이집 예산은 전체 누리과정 예산의 55%에 달하는 2조1,429억원이다. 하지만 정부는 누리과정이 유아교육법 상 교육과정과 영유아보육법 상 보육과정을 통합한 것으로 새삼 소관업무를 따지는 건 타당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또 “2012년 누리과정 지원을 시작할 당시, 전체 학생수 감소로 교육청이 정부로부터 받는 교육교부금에 여유가 생기는 만큼 그걸 활용하기로 이미 합의됐으므로 이제 와서 교육청이 국비를 더 내놓으라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복지예산을 둘러싼 재정 주체들 사이의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엔 전국 시장ㆍ군수ㆍ구청장협의회가 더 이상 복지비 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며 ‘복지 디폴트(지급 불능)’를 예고했다. 무상급식이나 기초연금 등을 둘러싼 정부ㆍ지자체ㆍ교육청 등의 갈등도 때마다 되풀이 돼왔다. 국정을 파행으로 몰고 가는 이 같은 갈등의 원죄는 마땅히 잘못된 정치에 있다. 이번에 어린이집 예산 문제가 또 불거진 만큼, 정치권은 당장 갈등 조정은 물론, 근본적 복지구조조정과 재원 확보방안까지 전면 재검토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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