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민낯 드러낸 두 사건
손쉽게 희생양 만들기까지 닮은꼴
실체적 진실규명 작업 놓지 말아야
요즘 극장가 흥행 1위는 황우석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을 다룬 영화 ‘제보자’다. 개봉 엿새째인 7일까지 누적관객 81만3,000여명. 각각 3, 4일만에 100만을 넘어선 ‘부러진 화살’(2012)과 ‘도가니’(2011) 열풍에는 미치지 못하나 ‘지금, 여기’의 실화를 소재 삼은 영화의 힘이 느껴진다. 임순례 감독은 선악대비 등 극적 장치로 감정을 자극하는 대신 무엇이 대중의 광기를 불렀고 언론의 역할은 무엇인가 같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그는 “영화가 기폭제가 돼 (이런 물음에 대해)사회적 논의가 된다면 좋겠다”고 했다.
속단은 이르지만 영화가 감독의 바람만큼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지는 못하고 있다. 영화의 완성도나 재미를 논외로 한다면, 쉽게 끓고 쉽게 잊는 우리 사회의 고질병, 잘 알려지지 않은 ‘도가니’의 실화와 달리 여러 달 생중계되다시피 한 황우석 사태는 법의 판단까지 나와 다 끝났다는 착각, 예나 지금이나 ‘또 다른 제보자’이기를 포기한 대다수 언론의 무심함 등이 중첩된 결과가 아닐까. 이에 더해 어떤 실화 소재 영화, 아니 어떤 실화도 참담함의 깊이를 비교하기 어려운 사건이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제보자’ 윤민철 PD의 실제모델인 한학수 MBC PD는 최근 낸 취재록 개정판 진실, 그것을 믿었다에서 황우석 사태를 일러 “우리 사회의 맨살을 숨김없이 드러낸 21세기 대한민국호의 슬픈 자화상”이라고 썼다. 세월호 참사를 두고 너나없이 내린 진단 그대로다. 황우석 사태를 지난 일로 치부하고 그대로 묻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PD의 지적처럼 사건을 가장 쉽게 처리하는 방법은 희생양 찾기다. 황우석 지지자들은 물론 대다수 언론, 청와대까지 가세해 PD수첩과 제보자를 난도질했고, 의혹 검증에 나선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 논문 공저자인 미국의 섀튼 교수, 줄기세포 문외한인 황씨를 대신해 실험했던 연구원 등이 줄지어 표적이 됐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승객을 버리고 도망한 선장과 선원들, 실소유주 유병언 일가, 적극적으로 구조하지 않은 해경 123정장 등 꼬리를 문 희생양 사냥이 벌어졌다. 황우석 신화가 무너졌어도 사태를 낳고 키운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은 여전하듯이, 선장과 유씨 일가, 정장을 단죄한다고 참사의 근원인 고장 난 국가시스템이 복원되지 않는다. 두 사건 모두 아직 밝혀지지 않은 숱한 사실들을 캐내 실체적 진실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끈질기게 이어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황우석 사태 당시 얼떨결에 취재팀에 끌려 들어가 두 달 넘게 씨름했다. 의혹이 하나 둘 사실로 드러나면서 충격과 함께 희망도 품었다. 이 엄청난 사태를 겪고도 우리 사회가, 특히 언론이 바뀌지 않을 리 없다는, 그러니 전화위복이 되리라는. 그러나 유효기간은 몹시 짧았다. 대다수 언론이 반성문을 썼지만 내용은 깊이 없이 어설펐다. 끝까지 황씨를 비호한 일부 과학기자들은 탈없이 자리를 지켰고, 비열할 정도로 PD수첩을 공격했던 한 신문은 끝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의혹 보도가 “짜증스럽다”던 대통령도 어물쩍 넘어갔다.
돌이켜 보면 그 사태에서 우리는 참 많은 걸 놓쳤다. 서울대는 연구윤리만 다잡을 게 아니라 사태 전반을 아우르는 진상조사위를 꾸려 제왕적 실험실 문화, 노예에 비견되는 사제관계 등을 속속들이 들추고 개혁했어야 한다. 검찰이 황씨가 끌어 모은 각종 공적자금의 사용처를 낱낱이 캐지 않은 것도 결국 사기 혐의 상당부분에 무죄가 선고되게 한 패착이었다. 그 밖에도 미완의 과제들이 숱하게 많았지만, 나는 달라지지 않는 세상을 탓하고 섣불리 희망을 품었던 스스로를 참 순진했다 한탄하며 그 사태로부터 멀어졌다.
“얼마나 쉬운지 모르겠다.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문학동네 세월호 특집에 실린 소설가 황정은의 고백은, 나의 순진함은 희망을 품었던 그 자체가 아니라 나의 노고를 보태지 않고도 세상이, 언론이 저절로 바뀌리라 여겼던 것임을 아프게 일러준다. ‘제보자’의 윤민철 PD는 마음이 흔들려 인터뷰를 거절한 제보자를 탓하는 후배 PD에게 “제보가 그렇게 쉬운 거였으면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었겠냐”고 묻는다. 내부 고발뿐이랴. 임 감독의 바람처럼 “또 다른 제보자인 언론”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절이다.
이희정 논설위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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