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첵랍콕 국제공항에 가까워지자 해안선에 늘어선 고층빌딩들이 마치 숲처럼 다가왔다. 항만에 차곡차곡 쌓인 성냥갑이 컨테이너로 보이기 시작할 즈음 착륙을 알리는 기내 방송이 나왔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한지 세시간 반만이었다. 홍콩은 아직 무더웠다. 버스를 기다리는 내내 덥고 끈적한 바람이 온 몸을 감싸며 불었다. 5분도 안돼서 전신을 흐르는 땀. 목덜미를 흥건하게 뒤덮는 불쾌감. 서울의 쾌적한 가을 공기에 익숙했던 나는 홍콩의 무더위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정신이 다시 또렷해진 건 홍콩 오션파크로 향하는 버스 안이었다. 차갑고 건조한 에어컨 바람이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오션파크는 홍콩의 대표적인 해양테마공원이다. 특히, 10월 한달 내내 열리는 이 곳의 핼러윈(Halloween) 축제는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핼러윈은 고대 캘트(Kelt)인들이 죽음의 신을 찬양하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서양에서 유래한 귀신축제인 셈이다. 오션파크 입구에 들어서자 공원 곳곳에 세워진 호박귀신 ‘잭 오 랜턴(Jack-O-Lantern)’들이 히죽거리며 귀신 놀이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웬만한 테마파크엔 다 있다는 ‘유령의 집’ 정도를 예상하며 아기자기 귀여운 캐릭터 열차에 몸을 실었다. 앞으로 닥칠 신개념 공포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H14’라고 쓰인 체험관으로 들어섰다. 왠지 불길한 표정의 의사와 간호사가 다가오면서 말을 건넨다. 병원처럼 꾸며진 밀실을 가로지르는 줄엔 토막 난 신체 일부가 걸려있다. 심장 부위가 뻥 뚫린 시체가 놓인 침대에 시선이 멈췄을 때 괴기스런 목소리가 들렸다. “이 방을 나가고 싶거든 숨겨진 열쇠를 찾아라” 4~6명이 한 팀이 돼서 열쇠를 찾아 방을 통과하는 미션이었다. 공포와 불안감에 휩싸인 채 방안을 뒤졌다. 일행 중 한 명이 혹시나 하며 시체의 가슴 속으로 손을 들이밀었다. 심장이 있었던 그 곳에서 찾은 열쇠를 CCTV에 비추자 문이 열렸다. 안도감도 잠시뿐, 한 사람만 겨우 엎드려서 통과할 만 한 좁은 틈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씩 기어서 앞으로 나아가는데 끈적한 무언가가 스멀스멀 얼굴을 스쳐간다. 자세히 보니 괴기스럽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한 갖가지 귀신과 좀비, 시체들이 나를 향해 손을 뻗고 있다. 공포의 손길이 스칠 때마다 여기저기 비명을 지르는 관객들. ‘H14’가 ‘올해로 14번째인 오션파크의 핼러윈(H) 축제 중 가장 무서운 체험관’이란 의미임을 녹초가 되고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그 후로도 6곳의 체험관을 더 들러 납량특집을 만끽하고 나니 어느덧 하루 해가 지나고 있다. 수족관(Aquarium) 옆 넵튠(Neptune) 레스토랑에서의 저녁식사. 핼러윈 축제기간 동안만 판매하는 관, 시체 모양의 요리가 이채롭다. 그 외에도 박쥐와 호박귀신을 연상하게 하는 다양한 메뉴가 깔끔하게 준비되어 있다. 가이드는 공원 내 턱시도(Tuxedos) 레스토랑(restaurant)과 함께 이 식당의 가격대비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고 귀띔해줬다. 테이블마다 마주 앉은 손님들은 낮 동안 체험관에서 경험한 공포와 놀람, 당혹감 등을 무용담처럼 쏟아 놓고 있다. 홍콩 오션파크 핼로윈 축제의 밤은 이렇게 깊어갔다.
입장료는 성인 320HK$(홍콩달러, 한화 약 4만3000원), 11세 이하는 160HK$다. 핼로윈 우대권을 사면 7개의 공포체험관을 비롯해 16개 놀이시설에 우선적으로 입장할 수 있다. 우대권 가격은 성인 628HK$(약 8만 5천원), 11세 이하 314HK$. 공포체험관 ‘H14’의 경우 16세 이상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예약해야만 입장이 가능하다. 그 밖의 정보는 오션파크 홈페이지(kr.oceanpark.com.hk/kr/home 또는 oceanpark.com.hk)에서 얻을 수 있다.
홍콩=고영권기자young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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