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인천 아시안게임이 끝났다. 개막식부터 빗나간 콘셉트로 “동네 운동회 수준이다”“한국판 전국체전이냐” 등등 호된 질책을 받았지만 경기력 측면에서는 성공적이라 할만하다. 세계신기록 17개, 아시아신기록 34개 등 기록도 풍성했는데, 이는 4년 전 광저우 대회(세계신 3개, 아시아신 17개)때를 훨씬 웃도는 것이다. 스포츠 대회 속성상 기록이 저조하면 ‘반쪽 대회’평가를 받기 마련이다. 따라서 인천 아시안게임은 인천시와 조직위의 불통 운영과는 별개로 그나마 저예산으로 ‘선방’했다는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특히 북한을 포함한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소속 45개국 모두가 참석한 ‘100% 아시안게임’을 치러내 의미가 깊다. 비록 남북한 공동입장과 기대를 모았던 북한 응원단의 참가는 불발됐지만, 그렇다고 퍼펙트 아시안게임의 진정성이 훼손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회 유종의 미는 꽉 막힌 남북관계 돌파구 마련을 위한 몸부림에서 찾아야 할 듯 하다. 폐막식을 불과 하루 앞두고 남북한 수뇌부들의 발 빠른 움직임은 막판 뒤집기 한판 승을 연상시킬 만큼 극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북한은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선수단을 통해 고위급 인사를 폐막식에 참석시키겠다는 의사를 전했고, 정부가 이를 전향적으로 수용하면서 급물살을 타게 됐다.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국가체육지도위원장,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가 방남한 것은 향후 통일정책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메가톤급 행보임에 틀림없다. 최근 5년 동안 발걸음을 끊었던 북한 권력서열 2~4위 실세들의 방남이기 때문에 후속조치에도 무게 감이 실린다. 그 중에서도 북한 국가체육지도위원장 최룡해는 “통일을 위한 사업에서 체육이 제일 앞서지 않았는가 하는 자부심과 긍지를 갖는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이쯤 되면 ‘당장 체육교류부터 하자’는 노골적인 러브 콜이라고 해도 지나친 해석은 아닐 터. 정홍원 국무총리도 “운동경기를 통해 분위기를 확산시켜 나가자” “교류와 협력에도 봇물 터지는 성과가 나길 바란다”고 화답했다. 황 총정치국장 역시 정 총리에게 “이번에 좁은 오솔길을 냈는데 앞으로 대통로로 열어가자”고 덕담을 건넸다.
모름지기 스포츠란 그런 것이다. 닫혀있던 서로의 마음을 녹이는 윤활유로 스포츠만한 소재가 또 있을까. 인천 아시안게임 북측 경기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남북 합동응원단이 출동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실제 북한 고위급 대표단도 “사심 없는 응원을 보내줘 좋은 성적을 내게 됐다”라며 사의를 표하기도 했다.
세계사적 사례를 살펴봐도 스포츠의 가치와 영향력은 도드라진다. 핵전쟁 위협이 상존하던 냉전시대, 미-중 국교수립의 신호탄이 탁구 경기에서 비롯 됐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른바 핑퐁외교다. 죽의 장막에 갇혀있던 중국이 2.5g 탁구공을 앞세우고 서방 세계에 본격 얼굴을 내민 것이다.
남북관계에서도 스포츠는 늘 해빙의 물꼬를 트는데 기폭제 역할을 해왔다.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에서 첫 남북단일팀이 출범한 이래 2000년 시드니올림픽 개막식에서는 공동 입장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남북한은 2007년 장춘 동계아시안게임까지 국제대회 개막식에서 모두 8차례나 어깨를 나란히 했다.
북측의 잇따른 도발과 남측의 강경대응으로 MB정부 5년과 박근혜 정부 1년 반 동안 남북교류는 암흑기를 겪었다. 하지만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서 나눈 남북 고위급 대화는 꺼진 불씨를 되살리기에 충분하다.
때마침 올해로 60주년을 맞는 서울~부산 대역전 경주대회(경부역전마라톤)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경부역전마라톤의 본래 취지는 한반도를 종단해 부산~신의주를 이어 달리는 통일기원 대장정이다. 북측 마라토너는 신의주에서 부산을 향해, 남측 마라토너는 부산에서 신의주를 향해 어깨 끈을 건네주고 이어받아 뛰는 모습을 한번 떠올려보자. 생각만해도 흥분되지 않는가. 보안문제로 정 곤란하다면 군사분계선에서 서로가 건네준 어깨 끈을 받아 뛰면 또 어떤가. 남북종단 역전마라톤이 통일을 향한 대통로의 첫 걸음이 되기를 희망한다.
최형철 스포츠부장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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