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나 유교와 달리, 기독교와 이슬람교에서는 고리대금업을 엄격히 금지해왔다. 구약성서에는 “너희 가운데 누가 어렵게 사는 나의 백성에게 돈을 꾸어주게 된다면, 그에게 채권자 행세를 하거나 이자를 받지 말라(출애굽기 22:25)”고 명시돼 있다. 이슬람 성전인 코란의 이자(리바ㆍRiba) 금지는 한층 단호해서 “하나님께서 고리대금은 금지하셨노라… 고리업으로 다시 돌아가는 자 그들은 불지옥의 동반자로서 그곳에서 영주하리라(2:275)” 같은 표현까지 있다고 한다.
▦ 비단 교리가 아니라도 고리대금업을 비윤리적으로 보는 시각이 고대로부터 널리 퍼져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말은 새끼를 낳지만 돈은 새끼를 낳지 못한다”거나 “돈은 교환에 사용하라는 것이지 이자를 받아 더 늘리라고 있는 게 아니다”며 고리대금업을 부정했다. 이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배경은 복잡하게 따질 것도 없다. 요즘 제조업 영업이익률은 아주 잘해도 10%에 이르기 어렵다. 반면 사채 이자는 연평균 200%가 보통이다. 그러니 뜻밖의 일확천금을 하지 않는 한 고리로 돈을 빌려 쓴 사람은 피가 빨리듯 막판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근대 이래 이자, 또는 고리대금업에 대한 윤리적 콤플렉스에서 벗어났다. 18세기 고전 경제학자인 애덤 스미스는 “이자는 채권자가 돈을 빌려 줌으로써 그 돈을 다른 데 활용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포기한 데 대해 채무자로부터 받는 대가”라고 정당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슬람국가에서는 지금도 이자를 기반으로 한 모든 금융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때문에 대표적인 자금 대차상품인 채권 역시 이자 대신 배당으로 수익을 얻는 구조가 보편화했는데 그게 바로 이슬람 채권 ‘수쿠크’다.
▦ 수쿠크는 채권 판매금을 특정사업에 투자하고 거기서 나오는 이익금을 채권 매입자들에게 배당금으로 나눠주는 식이다. 주로 이슬람국가에서 발행ㆍ유통됐으나 최근엔 중동 오일머니를 흡수하는 방편으로 영국과 홍콩 등 글로벌금융 허브에서 잇따라 수쿠크 발행에 나서면서 세계적인 수쿠크 열풍이 불고 있다는 소식이다. 국내에서는 2009년 수쿠크 발행의 관건인 세제혜택 등을 규정한 ‘이슬람채권법’이 발의됐으나 기독교계의 반발 등으로 무산됐다. 규제개혁 차원에서 서둘러 풀어야 할 과제의 하나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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