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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F-35 때문에 눈물 흘릴 뻔한 사연

입력
2014.10.06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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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을 끌어 온 차기 전투기(F-X)와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이 드디어 착수하는 순간이 왔다. 눈물이 나올 것 같다”

단군 이래 최대 무기 도입 사업이라 불리는 공군의 차기 전투기 사업의 기종이 F-35로 최종 결정되고 KF-X 사업 계획이 확정된 지난달 24일, 공군 고위 관계자는 그 감격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공군은 2018년부터 미국 록히드마틴사의 F-35 전투기 40대를 순차적으로 전력화하고 2025년까지 한국형 전투기(120대) 개발을 완료해 생산에 들어갑니다. 소요 예산만 합쳐도 15조원 이상. 하지만 공군 관계자의 ‘눈물 발언’에서 알 수 있듯 사업 계획이 확정되기까지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고 앞으로 넘어야 할 산도 많습니다.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국방부가 2012년 발간한 국방백서에 따르면 공군이 보유한 전투기는 460여대. 합동참모본부가 ‘방위 충분성 전력’으로 규정한 전투기 보유량 하한선이 430대인 점을 감안하면 넉넉해 보이지만 여기에는 월남전에 투입됐을 정도로 도입 40년을 훌쩍 넘긴 F-4를 비롯해 F-5 등 노후기종이 대다수 포함돼 있습니다. 2019년이면 이 가운데 180대가 퇴역해 그 공백을 F-X와 KF-X 등이 채워줘야 하는데 그간 예산 등을 이유로 구입 대수가 점점 줄어들고 도입 시기도 늦춰졌던 것입니다.‘전투기 부족대란’이 예상되는 공군으로선 애가 탈 노릇입니다.

차기 전투기사업이라 불리는 F-X 사업은 특히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차기 전투기 60대를 구매하는 이 사업은 애초부터 예산을 8조원대로 못을 박고 시작했습니다. 경쟁 입찰에는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미국 보잉사의 F-15SE과 스텔스 기능이 있는 미국 록히드마틴사의 F-35, 그리고 공중전에 강한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의 유로파이터 등 3개 업체가 참여했는데 록히드마틴과 EADS가 예산을 훌쩍 넘는 금액을 써낸 탓에 보잉사의 F-15SE가 단독 후보에 오르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자 지난해 9월 역대 공군참모총장 15명이 이례적으로 “차기 전투기로 F-15SE는 안 된다”며 반대 성명을 냈습니다. 예산을 맞추는 데만 열을 올리다 보니 정작 성능을 무시한 전투기를 택했다는 것이지요. 군 원로들이 특정 무기 구매와 관련해 집단 의견을 낸 첫 사례였습니다.

F-15SE는 빠른 속도에도 불구하고 적의 레이더에 걸리지 않는 스텔스 기능이 없다는 치명적 약점이 있습니다. 일반 전투기로는 북한 방공망을 뚫어 은밀히 표적을 공격하고 안전하게 귀환할 수 없기 때문에 공군은 그간 스텔스기를 강력하게 희망해왔습니다. 보통사람이 투명인간과 싸워서 이길 수 없듯, 적의 눈에 띄지 않는 스텔스 기와 일반 전투기 간 싸움의 결과도 불을 보듯 뻔합니다. 현존하는 세계 최강 전투기이자 ‘스텔스의 아버지’로 통하는 F-22가 모의전투에서 일반 전투기 260대를 격추시킨 사실만 봐도 그 위력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 중국이 자체 스텔스기 개발에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일본과 러시아도 스텔스기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앞으로 수십년을 써야 할 전투기로 스텔스 기능이 없는 전투기를 구입한다니, 공군으로선 기가 찰 노릇이었겠지요.

록히드마틴은 2일 F-35A 라이트닝II 합동공격전투기가 지난달 29일 초도비행을 실시하면서 호주공군의 F-35프로그램을 위한 또 하나의 중대한 이정표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AU-1으로 명명된 F-35A 전투기는 올해 안 호주공군에게 인도될 예정이다. 사진=록히드마틴 리즈 카스진스키와 알렉산더 그로브스 제공
록히드마틴은 2일 F-35A 라이트닝II 합동공격전투기가 지난달 29일 초도비행을 실시하면서 호주공군의 F-35프로그램을 위한 또 하나의 중대한 이정표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AU-1으로 명명된 F-35A 전투기는 올해 안 호주공군에게 인도될 예정이다. 사진=록히드마틴 리즈 카스진스키와 알렉산더 그로브스 제공

이런 우려가 반영돼 지난해 가을 방위사업추진위원회(방추위)에서 F-15SE가 부결되고 비싼 F-35를 택하는 대신 일단 40대(예산 7조3,418억원)만 구매하기로 결정됐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이 지난달 24일 방추위에서 최종 확정된 것입니다. 공군으로선 한시름 놓은 셈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넘어야 할 산도 있습니다.

F-35가 현재 개발 단계에 있는 '미완성 전투기'인데다가 추후에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핵심기술 이전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F-35 40대를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하면서 록히드마틴이 핵심기술 20여가지를 우리 쪽에 이전하기로 했는데 KF-X(한국형전투기)사업에 필요한 스텔스 기술은 이전하지 않기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표면상으론 F-X와 KF-X는 별개의 사업이지만 사실 KF-X 사업의 성공 여부는 F-X사업을 통해 얼마나 많은 기술을 이전 받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국산 전투기를 개발해 부족한 공중전력 공백도 메우고 경쟁력을 갖춰 해외에 수출까지 하려면 스텔스 기술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F-X사업이 주춤하면 KF-X사업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2001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처음으로 국산 전투기의 필요성을 밝힌 이후 타당성 검토만 5차례 이상 거치면서 10년 넘게 표류한 KF-X사업은 올해 엔진 대수를 놓고 쌍발이냐, 단발이냐의 논란을 거듭하다 겨우 이제 본격적인 출발을 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미흡한 기술이전 우려 외에도 아직 ‘예산 통과’라는 산이 더 남았습니다. 내년도 예산안 가운데‘사상 최대의 복지예산’이 돋보이는 상황에서 8조5,000억원(40%는 공동개발국 등이 부담)에 달하는 KF-X 예산이 기획재정부와 국회의 장벽을 순조롭게 통과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기 때문입니다. 공군이 “예산을 낭비하는 사업이 아니라 고용을 창출하고 미래 항공산업 발전을 위한 사업”이라고 호소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어쨌든 이런 우여곡절로 뒤늦은 출발을 하게 된 F-X와 KF-X사업. 공군은 수 년여의 전력공백을 현재 보유한 전투기의 가용성과 효용성을 최대한 높이면서 메울 예정입니다. 비록 출발은 늦었지만 그 만큼 내실 있게 추진해서 지난달 24일 공군 관계자 입에서 나왔던 ‘감격을 담은 눈물 발언’을 사업의 성패 여부가 드러나는 10년쯤 후에도 들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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