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모자를 좋아해서 이십대에는 자주 쓰고 다녔다. 아직도 수십 개의 모자가 옷장을 차지하고 있다. 이제는 많이 낡았고 더 이상 어울리지도 않지만 버리지 못하고 있다. 뭐랄까. 모자를 쓰면 마음이 편해졌다. 신체의 일부처럼 없으면 허전하고.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있으면 불편해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심리적 답답함 같은 걸 불러 일으켰던 것 같다.
드가의 ‘모자 가게에서’는 1882년에 그려진 파스텔 그림이다. 19세기적 일상이란 이런 것일까. 그림 속에는 모자를 양손에 들고 있는 가게 점원과 모자를 써보고 있는 손님, 이렇게 두 여인이 보인다. 왼쪽 상단에 반쯤 잘린 채 그려진 점원의 구부정한 자세와 그녀가 들고 있는 모자의 깜깜함에 비해 손님의 얼굴은 지나치게 밝고 환하게 드러나 있다. 점원의 이목구비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림의 정면을 차지하고 있는 빈 의자는 두 여인보다 더 두드러져 보인다. 누런빛을 내는 낡고 거친 의자인데 많은 손님들이 여기에 앉았을 법하다.
사람과 사람의 우연한 만남과 관계 맺기는 그런 게 아닐까. 마주 앉든 나란히 앉든 그 사이는 메울 수 없는 거리가 발생하니 그 사이에 빈 의자가 하나쯤 존재할 것이다. 21세기 점원의 이목구비는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까. 우리가 맺는 사회적 관계는 어떤 의자를 마련하고 있는 것일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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