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관광안내표지판 엉터리
영어 30%가 제대로 표기 안 돼
이달 초 제주도를 찾은 미국인 여행객 데이비드 존슨(26)씨는 관광안내표지판에 쓰여진 ‘섭지코지(Seopjikoji)’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 곳이 관광지라는 건 알았으나 어떤 장소인지 설명이 전혀 없었기 때문. 외국어 관광안내 표준 표기법으로는 ‘Beach(해변)’라는 설명이 함께 적혀 있어야 했지만 지방자치단체가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전국에 있는 관광안내표지판의 상당수가 표기법에 맞지 않아 ‘관광 한류’를 표방한 정부의 전방위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25일부터 5일까지는 정부가 정한 ‘외국인 관광객 환대 주간’이다.
5일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실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제출받은 ‘전국 관광안내표지판 실태 전수조사’에 따르면 전국에 등록ㆍ설치된 1만3,866개의 표지판 중 영어 표기(9,077개)의 29.6%(2,690개)가 표준 표기법과 일치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어는 4,847개 중 633개(13.1%), 일본어 표기는 689개 중 77개(11.2%)가 표준 표기법을 준수하지 않았다.
문체부와 한국관광공사는 2009년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영어 병기를 원칙으로 하고, 일본어ㆍ중국어 표기도 권장하는 관광안내표기 가이드 라인을 제정했다. 2012년엔 용어 통일을 위해 관광공사가 ‘외국어 관광안내표기 용례집’을 발행, 표준 표기법도 고시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영어 표기는 전남에서, 중국어 표기는 제주에서 가장 오류가 많았다. 전남에 있는 표지판 1,460개 가운데 41.8%가 표기법과 맞지 않았고 표기법과 일치하는 것은 10.9%에 그쳤다. 나머지 691개(47.3%)는 식별 불가능한 표지판이었다.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제주에서도 중국어 표기는 제대로 지켜진 것(85개)보다 틀린 것(93개)이 더 많았다. 표지판 자체가 식별 불가능 한 것도 전체의 16%인 2,300여개에 달해 관리가 시급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정이 이런데도 표지판 관리 주체인 지자체는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1월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담당 공무원 185명 중 절반가량은 “표지판 현황 파악을 못하고 있다”고 했고, 10명 중 4명꼴로 “용례집이 있는지조차 몰랐다”고 답했다. 강 의원은 “‘외국인 방문객 1,000만명’ 시대에 걸맞게 관광지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안내표지판을 조속히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재진기자 blan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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