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 시대를 사는 현대인

인간이 기계에 예속돼

‘예술’통해 인간을 업그레이드 해야

원고 마감일인 어제도 고도로 발달된 정보사회에 사는 대가를 톡톡히 지불해야했다. 오전 10시. 원고를 쓰려고 노트북을 켰다. 이미 무엇에 관해 쓸 것인가는 평소 틈틈이 생각날 때마다 스마트폰에 담아 두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이걸 정리해서 워드프로세서로 컴퓨터에 입력한 후, 이메일로 신문사에 전송하는 일뿐이다. 좋은 세상이다. 그런데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켜니 운영체제를 업그레이드하란다.

오전 11시. 업그레이드 시작한지 1시간 경과했는데 별 진전이 없다. 기다리라는 동그라미 아이콘이 화면 중앙에서 빙빙 돌고 있다. 이거 언제 끝나나…. 기다리다 지쳐서 점심 식사 후에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로 하고 자리를 떴다.

오후 2시. 점심식사 후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제 내 컴퓨터는 가장 최신 버전으로 업그레이드가 된 상태이다. 성공적으로 업그레이드한 것에 뿌듯한 자부심이 생긴다. 스마트폰을 컴퓨터에 연결했다. 그런데 컴퓨터가 스마트폰을 인식하지 못한다. 업그레이드 과정에서 내 컴퓨터에 저장되었던 스마트폰 정보가 없어진 모양이다. 흠, 그렇다면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가장 최신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해야겠다.

오후 3시. 헉! 업그레이드하는 도중에 내 주소록 일부 데이터가 없어졌다. 얼마 전에도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동기화하다가 스마트폰에 저장했던 주소록과 캘린더를 싹 지워버린 사고가 있었다. 대형사고였다. 나중에 일일이 수동으로 입력하느라 일주일 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라 등골이 오싹해진다. 다행히 이번에는 주소록을 백업해 두었었다.

오후 5시. 드디어 내 컴퓨터, 내 스마트폰, 모두 정상화되었다. 아니, 업그레이드 되었으니 더 똑똑해진 거다. 오전부터 두어 차례 ‘멘붕’이 있긴 했지만 정신을 집중해서 한 시간 만에 일을 마쳤다. 이제 편안한 마음으로 저녁 먹고 아시안게임 중계나 봐야겠다. 뭐, 평상시와 다름없는 평온한 주말이었다.

이런 상황은 몇 년 전에 상영된 영화 매트릭스를 생각나게 한다. 3부작 대형 블록버스터로 제작된 이 영화에서 인간은 매트릭스라고 불리는 거대한 컴퓨터 시스템을 위한 에너지 공급원으로 사용되고 컴퓨터에 의해 경작되게 된다. 컴퓨터가 제공하는 가상세계에서 인간은 마치 평온한 세상에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처럼 환상 속에 살지만, 실제로는 양계장처럼 진열돼 최소한의 영양을 공급받으며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거기까진 아니더라도 내 생활의 상당 부분은 내가 사용하는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 각종 디지털 기기를 더 똑똑하고 파워풀하게 만들기 위해 업그레이드 하는데 투자하고 있다. 오늘만해도 나 자신을 위한 시간보다는 기계를 위한 시간에 더 많은 공을 들이지 않았는가 말이다.

컴퓨터 기술이 발전하면 컴퓨터가 궂은일을 맡고 인간은 고상하고 창의적인 일을 할 걸로 기대했었다. 그런데 그 반대로 인간이 궂은일과 단순 반복적인 일을 하고 컴퓨터가 창의적이고 부가가치가 더 높은 일을 하는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기억력도 감퇴되고, 집중력도 떨어지고, 무엇보다 판단력도 흐려지고 있다. 기계가 중요한 결정을 해 주는데, 굳이 인간이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오히려 그랬다간 객관성과 투명성과 공정성을 해치는 것으로 오해 받기 십상이다. 결국 기계를 업그레이드하면서 정작 우리 자신을 다운그레이드하고 말았다.

이제 우리는 기계는 신뢰하지만 인간은 불신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상황을 반전시켜 인간이 중심이 되는 사회로 되돌려야 한다. 첫걸음은 간단하다. 우리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다. 성형수술로 외모를 업그레이드하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동서양 막론하고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던 업그레이드 매뉴얼이 있다. 그걸 우리는 ‘예술’이라고 부른다. 예술은 우리 내면을 업그레이드해 준다. 예술은 특별히 선택 받은 사람이 고도로 정제된 특별한 일을 하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 현안 이슈에서 잠시 벗어나 직접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은 다른 세계에 마음을 여는 것이 예술행위의 시작이다. 그리고 예술로 우리 내면을 업그레이드하다 보면 저절로 외모도 업그레이드된다.

원광연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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