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현대차그룹이 10조원이 넘는 금액으로 삼성역의 한전부지 매입에 성공하면서 세간의 관심은 온통 입찰금액의 적정성에 맞춰져 있다. 그러나 한전부지의 개발에서 정말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우리나라의 제1의 도심을 어떻게 개발할 것이며, 이 과정에 현대차그룹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가 그것이다.
1990년대 이후부터 강남지역은 사실상 우리나라의 제1 도심이었고, 그 중심지역은 강남역 일대이다. 그런데 이제 중심지역이 삼성역 일대로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삼성-잠실-문정-위례-판교-분당으로 이어지는 개발축이 더욱 강화되면서 무게 중심이 삼성역 쪽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조만간 삼성역이 4-5개의 철도교통노선이 개통되는 결절점이 되면서 이 지역에 거대한 집적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내년이면 김포공항으로 연결되는 지하철 9호선이 개통될 예정이고 일산-삼성을 연결하는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수서-창동-의정부로 연결되는 KTX, 경전철 위례-신사선까지 예정되어 있다.
강남역 일대는 1960년대 영동개발 시기에 계획적으로 조성된 도심이 아니라 지하철과 고속도로 개통, 고급 아파트 단지 개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도심이다. 지하상가를 제외하고는 계획적으로 조성된 보행전용 쇼핑몰도 없다. 끊임없는 연도상가로 연결된 상하이의 남경로나 싱가포르의 오차드로드, 주말이면 교통을 차단하는 도쿄의 긴자 거리 같은 도심의 상징가로도 없다.
이제 제1 도심으로 성장하게 될 삼성역 일대는 강남역 개발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 우선, 도심으로서의 비전을 명확하게 설정하고 개발의 공공성이 실현되도록 계획적으로 유도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서울시가 이 지역의 비전을 발표하고 도시계획 가이드라인을 미리 제시한 것은 적절한 조치였다. 이 지역을 국제업무와 MICE 등의 기능을 갖는 국제교류복합지구로 개발되도록 용도변경을 허용하되, 기부채납의 범위를 미리 제시함으로써 토지소유자와 매입자가 매각과 개발계획 수립에 지침이 되도록 유도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결국 이 부지는 감정가격의 3배가 넘는 가격으로 낙찰되고 말았다. 과도한 낙찰금액은 이 지역의 공공성을 실현하는 데 많은 부담이 될 가능성이 크다. 높은 매입가격에 걸맞은 도시계획적인 규제완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성역 일대가 세계인이 즐겨 찾는 새로운 제1도심이 되기 위해서는 현대차그룹의 동의와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도심은 개방과 소통의 공간으로 연속되어 있어야 발전할 수 있지만, 대기업의 본사는 기획통제와 관리를 위한 본부이기 때문에 폐쇄적인 공간이 되기 쉽다. 현대차그룹이 사익의 극대화를 위해 과도한 고밀개발과 상업적 용도를 고집하는 순간 도심으로서의 쾌적성은 떨어지고 공익을 위해 필요한 기능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삼성그룹의 본사가 이전한 이후 강남역 일대의 부동산 가격이 몇배가 올랐지만, 본사 근처의 가로는 활성화되지 못했다. 본사건물의 사회적 역할보다는 본사 건축물로서의 위엄성과 기능성을 지나치게 강조했기 때문이다. 해마다 뉴욕의 록펠러 센터에서는 크리스마스 행사가 개최되고 베를린의 소니센터에는 매년 800만명 이상이 찾지만, 우리나라에는 시민이 즐겨 찾는 대기업본사 건물이 거의 없다.
서울시는 상암동 DMC에서 모든 대기업 본사의 저층부를 개방하고 가로를 활성화하도록 정교한 지침을 만들고 체계적으로 관리한 경험이 있다. 상암동의 CJ엔터테인먼트본사나 최근에 완공된 MBC 신사옥은 시민들이 즐겨찾은 명소가 되었다. 이제 또다시 삼성역 일대에서 가장 중요한 부지에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는 본사 건축물이 조성되어서는 안된다. 이를 위해서는 현대차그룹이 건축물의 구상과 계획단계에서부터 시민에게 개방하고 서울시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시민들이 즐겨 찾는 착한 본사 건물은 어떤 훌륭한 제품 개발이나 광고보다도 기업이지 개선에 더 큰 효과를 낸다. 좋은 건물과 좋은 장소가 밀집된 장소가 좋은 도심이 된다. 삼성역 일대가 좋은 도심이 되는 것이 현대차그룹의 기업가치를 높이는 길이다.
변창흠 세종대학교 교수, 한국도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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