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서 공연 마친 소프라노 서예리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의 1, 2층 860석이 꽉 찼다는 수치적 사실이 중요할까. 양적으로 보자면 재독소프라노 서예리(36)가 고국에서 가졌던 첫 단독 리사이틀 ‘바로크 & 현대’는 당연히 히트작이었다. 기립 박수, 사인 순서를 기다리는 긴 줄 등 세계적 예술인이란 이름값에게 합당한 풍경이 연출됐다. 그러나 이날, 무대에 쏟아진 환호는 타성적이지 않았다.
“(한국의) 객석 수준이 매우 높다는 생각이다. 나의 몰입에 방해되지 않게 박수의 타이밍을 배려하고 있었다. 마치 유럽서 공연하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2018년까지 세계에서의 모든 일정이 채워져 있는 이 ‘스타’는 고국의 관객을 그렇게 평가했다. 객석이 연희자를 평가하듯 무대도 구경꾼들을 가늠하는 법이다.
그는 한국의 아픔을 직시했고 무대에서 작품을 통해 만났다. “요즘 한국 사회에는 너무 힘든 일이 끊이지 않잖아요? 울고 싶어도 못 우는 분들이 많을 텐데, 눈물로라도 정화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어요.”
쿠프랭, 몬테베르디 등 국내서는 접하기 힘든 17세기 음악가들의 곡에서 우아한 드레스 차림으로 바꾸고 나온 그는 콜로라투라를 능가하는 고음으로 영혼을 울렸다. “많은 관객이 우는 것이 보였어요.”사실 그의 해외 무대에서 흔한 광경이지만 최근 고국의 속앓이를 아는 그에게는 각별할 수밖에 없었던 광경이다.
1,000년을 오가다 리게티의 ‘마카브르의 신비’로 끝난 정규 프로그램의 구성은 모두 그가 짠 것. 나아가 의상, 부속물 등이 모두 그의 소관이었다. 촛불을 붙일 때 기도하듯 한 것은 중세 수도원 이래 지켜져 온 저녁 의식인 ‘테니브리’(Tenebrae)를 따른 것이다. 무대에서의 일거수일투족에 자의적인 것은 결코 없었다. “당시 촛불은 13개 아니면 15개를 썼다고 하나, 이번 무대에서는 곡의 간격에 맞춰 7개로 한 거죠.”
앙코르까지, 타성에 젖은 대목은 한 순간도 없었다. 윤이상의 ‘그네’. 작곡가의 추상적이고 난삽한 피아노곡 ‘간주곡A’만을 본 무대에서 감상한 객석의 갈증을 달래기 충분한 곡이었다. 제자였기도 한 피아니스트 홀거 그로쇼프는 ‘자르트’(Zartㆍ투명하리만큼 부드럽게)라는 스승의 주문을 충실히 따랐고, 그 작품을 언젠가는 국내에 꼭 소개하리라던 서예리의 소원을 풀어줬다.
6일 한 TV 프로그램의 녹화를 끝내고 그는 다시 길을 떠나야 한다. 마지막 앙코르로 택한 헨델의 오페라 ‘줄리어스 시저’ 중 ‘괴로운 운명에 눈물이 넘쳐’가 짙은 여운으로 맴돌았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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