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의 계절 10월이 되면서 일본 열도가 들썩이고 있다. 올해는 일본인 중 누가 상을 받을 지를 두고 예상 후보들에 대한 예측기사가 벌써부터 쏟아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은 누가 뭐래도 아시아를 대표하는 노벨상 강국이다. 중간자의 존재를 예측한 유카와 히데키 교수가 1949년 물리학상을 수상한 이후 지금까지 19명의 일본인이 노벨상 영예를 안았다.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로 따지면 세계 8위다.
수상자를 배출한 분야도 다양하다. 화학상 7명, 물리학상 6명, 생리의학상 2명, 문학상 2명, 평화상 1명이다. 경제학 분야에서 수상자가 나오면 일본은 노벨상 전 분야를 섭렵하는 국가가 된다.
올해도 일본의 노벨상 후보로 다수의 인사가 거론되고 있다. 영원한 문학상 후보 1순위인 무라카미 하루키를 비롯,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물질을 개발한 엔도 아키라 도쿄농업대 교수가 유력 후보다. 2008년부터 짝수해마다 수상자가 나온 까닭에 올해는 더욱 기대감이 높다.
이런 가운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수상 후보가 급부상했다. 오슬로국제평화연구소(PRIO)가 3일 ‘일본헌법 9조를 지키는 일본국민’을 평화상 수상자 후보 1위로 예측한 것이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등외에 있던 터여서 더욱 이변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발표(10일)를 불과 일주일 앞둔 시점에서 유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되면서 실제로 일본 국민이 노벨평화상을 받는 일이 일어날 지 관심도 뜨겁다. ‘헌법 9조’가 실제 수상을 하면 일본의 평화상 수상자는 “핵무기를 들지도, 보유하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이른바 비핵3원칙을 주장한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1974년)에 이어 두번째다.
일본 헌법9조는 “전력 보유를 인정하지 않고 교전권을 영구히 포기한다”는 내용이 골자로, 이 조항을 토대로 일본의 헌법을 흔히들 ‘평화헌법’으로 부른다. 헌법 9조가 노벨평화상 후보로 떠오른 것은 그만큼 헌법 9조의 가치가 위협받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헌법 9조’가 노벨평화상 후보로 올리자는 제안은 도쿄 근교 가나가와현에 거주하는 30대 주부 다카노스 아오미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두명의 어린 자녀를 둔 그는 아베 신조 총리가 헌법 9조를 변경,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발상에 위기감을 느꼈다. 자신들의 두 아이가 언젠가 전쟁터에 끌려가 희생양이 될 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만일 헌법 9조가 노벨평화상을 받아도 아베 총리가 이런 주장을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노벨위원회에 헌법9조를 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
평화상 대상후보는 개인이나 단체가 가능하다는 노벨위원회의 회신에 다카노스는 ‘헌법 9조 노벨평화상 실행위원회’를 결성, 헌법9조를 지켜온 일본국민을 수상 후보로 변경, 각계 인사들의 추천을 통해 올해 4월 정식 후보로 등록했다. 지금도 가두 및 인터넷 등을 통한 지지서명이 40만명을 넘어섰고, 한국어 사이트(http://chn.ge/SX9NHa)도 개설돼있다.
후보 등록이 마무리된 직후 기자는 다카노스와 함께 이 운동을 펼치고 있는 오치아이 마사유키 공동대표를 취재한 적이 있다. 불과 대여섯달 전의 이야기지만 당시 헌법 9조가 노벨평화상의 주요 후보로 거론되는 것은 즐거운 상상 정도였다. 이를 통해 일본인과 세계인이 헌법 9조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이라고 여겼다.
이왕 상상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으니 조금만 더 상상의 날개를 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오치아이 대표는 당시 인터뷰서 만일 노벨평화상 수상이 확정되면 누가 대표로 상을 받느냐는 질문에 “일본을 대표하는 아베 총리가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누구보다도 헌법 9조를 바꾸고 싶어 안달인 아베 총리가 헌법 9조를 지키는 일본인을 대표해, 전세계 정치가라면 누구나 서고 싶어하는 영예로운 노벨평화상 시상대에서 오른다면 수상 소감은 어떤 내용일까. 벌써부터 발표일이 기다려진다.
한창만 도쿄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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