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반환 후 부패 만연·삶의 질 하락… 정부는 귀 닫은 채 통제만 강화"
과격함 없어 기존 시위와 다른 양상… 투쟁의 성공 여부 반신반의 기색
“아이들이 갖고 싶어하는 자전거를 사 주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부모의 마음과 같다. 미래의 내 아이와 홍콩을 생각하며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1일 홍콩 정부종합청사와 지하철 애드미럴티(金鐘)역 사이에서 시위대를 위해 생수와 빵 등을 나눠주던 엠마 추이(23ㆍ여)는 자신이 집회에 참가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홍콩 링난(嶺南)대를 다니는 그는 “지금 목소리를 높여 얘기하지 않는다면 홍콩의 미래는 기약하기 힘들 것”이라며 “언젠가 내 아이 앞에서 부끄러워하며 후회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한 사람의 작은 힘도 하나로 뭉치면 정부에 큰 압력이 될 수 있다”며 “이 순간이 자랑스럽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28일 새벽 1시 시민단체 ‘센트럴을 점령하라’(Occupy Central)의 선언으로 본격화한 홍콩 시민들과 학생들의 도심 주요도로 점거는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제65주년을 맞은 1일 국경절에도 계속 됐다. 시위는 중앙 정부가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후보를 사실상 친중 애국인사 2, 3명으로 제한하기로 한 데 반발해 일어난 것이다. 시위 과정에서 경찰이 무장하지 않은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사용하자 분노가 폭발했다. 그러나 그 바탕에는 1997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후 늘어난 부패와 삶의 질 하락, 사회 퇴보 등에 대한 불만,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자리잡고 있다.
영화계에 종사하는 린와이완(26)은 “영국 경찰과 관원은 공정하고 청렴했는데 중국에 반환된 뒤 경찰과 관원의 부패가 만연한 상태”라며 “소득 보다 물가는 더 많이 올라 살기 힘들다”고 말했다. 5홍콩달러(700원)였던 코카콜라 한 병이 어느새 8홍콩달러(1,100원)까지 올랐고, 몇 년 전만 해도 7,000홍콩달러(96만원) 정도였던 월세가 지금은 1만홍콩달러(137만원)로 생활을 짓누르고 있다. 100대 120이던 홍콩달러와 인민폐 환율도 100대 80이 됐다. 홍콩인은 자신의 자산 가치가 인민폐 대비 30% 하락하는 것을 두 눈 뜨고 지켜봐야 했다는 얘기다. 홍콩 정부와 중앙 정부가 이런 문제에 귀 기울이기는커녕 오히려 통제를 강화하자 결국 시민들과 학생들이 들고일어났다는 말이다.
토니 웡(25)도 “홍콩 정부는 홍콩인의 정부”라며 “당연히 홍콩인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홍콩인들 사이에선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위기 의식이 확산되고 있다”며 “홍콩이 우리의 집인데 이민을 갈 수도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번 홍콩 시위가 전통적인 시위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현장에선 돌과 쇠파이프, 화염병 등 과격한 무기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겉으로만 보면 마치 도심 거리의 교통을 차단한 채 벌이는‘차 없는 거리’문화 행사처럼 느껴졌다. 이 때문에 홍콩에 관광을 온 외국인들조차 학생들이 점거한 거리 사이를 유유히 걸어 다녔다.
특히 학생들은 누구도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지원물품들이 쇄도하자 학생들은 서로의 역할을 분담해 이를 질서 있게 분배했다. 쓰레기는 분리수거까지 하며, 현장을 늘 깨끗하게 유지했다. 불필요한 확성기 사용도 최소화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책을 펴 놓고 공부를 하거나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학생도 있었다. 참가자의 스마트폰으로 시위 상황 등은 실황 중계됐다.
신기하게도 시위 지휘 본부 같은 것조차 없다. 이 때문에 시위가 구체적 성과를 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안심한 경찰이 멀찌감치 선 채 망만 보고 있는 형국이다.
이번 시위가 홍콩의 미래를 바꿀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홍콩인들조차 반신반의했다. 그레이스 우(28ㆍ여)는 집회가 성공할 것이라고 믿느냐는 질문에 “이건 가능하냐 불가능하냐의 문제가 아니다”며 “우리는 집회를 가질 권리가 있고 이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황샤오팅(20)은 “단결된 힘을 보여준다면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알바 창(18)은 “중앙 정부가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보지만 이런 시위를 통해 조금씩 바꿔나갈 수 있다면 성공한 것이라고 믿는다”며 환하게 웃었다.
홍콩=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