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나는 조용한 적이 별로 없었다. 친구들을 불러 한데 모아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집에 손님이라도 찾아오는 날이면 내가 어제 무슨 책을 읽었는지 엄마가 오늘 아침에 무슨 음식을 만들었는지 신나게 떠들어댔다. 손님은 어린애가 기특하다는 듯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다. 내가 얘기에 몰두할 때 사람들의 눈이 또랑또랑 빛나는 게 좋았다. 그러나 커가면서 나는 대화에도 소위 ‘궁합’이란 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인데도 내 말을 듣고 맞장구를 쳐주는 사람도 있고 기발하다고 생각되는 이야기를 했을 때조차 아무 반응 없는 사람도 있었다. “너는 네 얘기만 하잖아.” 어느 날 친구의 말을 듣고 오랫동안 상념에 잠겼다. 그 말은 더없이 적확해서 치명적이었다. 그 뒤로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내 말을 하는 것만큼이나 상대의 말을 듣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귀가 트이고 눈이 뜨이고 머리가 맑아졌다. 얼마 전에 알게 된 순우리말이 있다. ‘입고프다’와 ‘귀고프다’가 바로 그것이다. 입고프다는 “자유롭고 숨김없이 말을 하고 싶다”는 뜻, 귀고프다는 “실컷 듣고 싶다”는 뜻이다. 어른이 되니 입고픈데도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입을 닫는 일이 많아졌다. 귀고픈데도 상대의 눈치를 살피는 일이 많아졌다. 입고픈 사람이 귀고픈 사람을 만나는 순간이, 이 길 위에 부디 많았으면 좋겠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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