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납치 피해자 재조사를 둘러싼 북일 협상이 좀처럼 진척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이 이달 초 발표예정이던 12명의 납치 피해자의 조사보고를 미룬 채 특정 실종자와 전후 북한으로 건너간 일본인 아내의 정보를 협상카드로 내밀고 있어서다. 일본은 북한의 태도를 명백한 약속위반으로 규정하면서도 대북 강경자세로 일관할 경우 북한이 재조사에 응하지 않겠다고 판을 깰 것을 우려, 전전긍긍하고 있다.
아베 일본 총리는 30일 북한이 일본인 납치문제 재조사 상황에 관해 일본 측이 북한을 방문해 설명을 들을 것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전날 중국 선양(瀋陽)에서 열린 북일 외무성 국장급 협의 때 송일호 북일 국교정상화교섭 담당 대사가 이하라 준이치(伊原純一)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에게 "평양에 와서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원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 좋겠다"는 제의를 했다고 기자회견에서 설명했다.아베 총리는 북한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방식으로 착실하게 조사에 임하고 있지만, 초기 단계라서 구체적인 조사 결과를 보고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는 뜻을 송 대사가 이하라 국장에게 표명했다고 전했다.
일본 언론들은 일본 정부가 납치문제 재조사 상황에 관한 설명을 듣기 위해 당국자를 평양에 파견하는 방향으로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하라 국장은 송 대사와 만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납치 피해자 조사”라며 조기 조사결과 발표를 요구했다. 송 대사는 “(최초)보고 시기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았다”며 “이번 회의는 결과 보고가 아니라 상황보고 성격”이라며 당장 정보를 제공할 의사가 없음을 시사했다.
북일은 5월 일본 정부가 공인한 납북 피해자 12명을 포함한 정보를 북한측이 재조사한다는 스톡홀름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아베 신조의 연내 방북 가능성까지 점쳐질 정도로 밀월관계를 유지했다. 북한은 8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북일 극비접촉에서 돌연 요코타 메구미 등 일본인 납치 피해자와 관련된 새로운 정보가 없다며 대신 전후 북한으로 건너간 조선인의 일본인 아내, 북에 납치됐을 가능성이 있는 특정 실종자 관련 내용을 1차 보고서에 포함하겠다고 제안했다. 북한은 이와 함께 만경봉 92호의 일본입항재개 등 일본의 독자제재 추가 완화를 제시했다. 정보 제공의 대가로 추가적인 경제적 이득을 얻겠다는 것이다.
북한에 뒤통수를 맞은 일본은 딜레마에 빠졌다. 일본이 강경자세로 기울면 북한이 재조사 시행을 약속한 스톡홀름 합의 자체를 파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2008년에도 재조사 시행 약속을 깨뜨린 전례가 있다. 반면 일본이 북한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관심 대상이 특정 실종자와 일본인 아내로 옮겨 가 납치 피해자 문제가 묻힐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교도통신은 “북한의 생각을 좀처럼 읽을 수 없어 올봄 이후 순조롭게 진행되던 북일 협상이 기로에 놓였다”며 “지금까지 경험한 적이 없는 험난한 협상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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