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에 소홀한 엄마ㆍ이민자 등 유럽사회 문제 한국과 맞닿아
영미권 중심 연극계 변화 바람
북유럽 공연 관계자 입장에서 보면 한국은 불모지나 마찬가지다. 세계 무대공연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영미권 작품들이 시장을 잠식하고 있고 간간히 소개되는 제3 세계 작품 역시 영국과 미국에서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것들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이러한 흐름이 서서히 깨지고 있다. 지난 달 6일 막을 내린 연극 ‘가을 소나타’는 스웨덴의 극작가이자 시나리오작가인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작품이 원작이다. 가정에 소홀한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에게 야속한 감정을 느끼는 모녀의 애증을 중심으로 인류의 보편적 감정을 그렸다. 2009년 초연 당시 스웨덴 작품에 생소함을 느낄 수 있다는 일부 우려와 달리 호평을 받고 올해 재연됐다.
현재 공연 중인 ‘이 세상에 머물 수 있게 해달라는 남자’는 아예 북유럽 희곡을 소개하는 시리즈의 하나다. 시리즈는 2011년 요나스 하센 케미리의 ‘침입’으로 시작했다. 극은 스웨덴 내 이민자들과 그들에 대한 서유럽의 시선을 극중극, 역할 바꾸기 등으로 표현했다. 미국 9ㆍ11 테러 이후 유럽 사회에 확산된 이슬람 문화에 대한 공포와 그로 인한 이주민들의 시선을 비주류의 시각에서 그렸다. 언뜻 한국과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최근 급증하는 이민자들과 그로 인한 사회문제가 부각되고 있는 점 등 연극을 꼼꼼히 뜯어보면 스웨덴과 한국사회가 꽤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그 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 무대에 오를 정도로 큰 관심을 받았다.
노르웨이의 국민 극작가이자 현대극의 아버지라 불리는 헨릭 입센의 ‘사회의 기둥들’도 다음달 무대에 오른다. 1877년 쓰인 이 작품은 창작된 지 무려 137년 만에 한국에 처음 소개된다. 극은 스스로 사회의 기둥들이라 칭하는 기득권 세력의 추악한 뒷모습을 그렸다.
북유럽 작품이 국내에 연착륙할 수 있는 이유는 예전 유럽사회가 가지고 있던 문제가 현재의 한국사회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기둥들’의 김광보 연출은 “딱히 처음부터 북유럽 작품을 선택하려던 것은 아니었다”며 “우리사회와 동시대성을 띠는 작품을 찾다 보니 입센의 ‘사회의 기둥들’이 딱 들어맞았다”고 밝혔다. 날이 갈수록 복잡다난해지는 한국사회의 모습이 연극계에 잔잔한 변화의 바람을 불러오고 있다. 박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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