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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서도소리 한 번 들어보소

입력
2014.09.30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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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순 명창 입문 40주년 음반

형극 같은 녹음 과정에 한때 기진

풍문 떠돌던 추풍감별곡 복원

서도소리 음반 '소리의 길'을 낸 한명순 명창.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서도소리 음반 '소리의 길'을 낸 한명순 명창.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만고영웅 호걸들아 초한승부 들어보소(하략).”

곧고 청아하게 4ㆍ4조의 한문 사설이 뻗어 나간다. 옛 소리라 하면 으레 따라오던 순우리말 어휘에 한의 정서가 아니다. 체면과 교양을 중시하던 양반의 풍류다. 판소리의 세에 밀렸던 황해도의 서도소리가 명창 한명순(54ㆍ황해도 무형문화재 놀량 사거리 보유자)씨의 목청으로 살아났다. 한씨가 발표한 음반 ‘소리의 길’(휴먼앤북스). 한껏 기지개 켜듯 음반 다섯 장에 두툼한 해설집이 붙었다. 그의 서도소리 입문 40년 기념음반이다. 공연도 할 예정이다.

기념이란 말은 사실 너무 한갓지다. 이번 음반은 녹음 작업부터 가시밭길이었기 때문이다. “녹음을 지난해 2월 시작했는데 녹음이 힘들어 12월에 기진했습니다. 한방병원에서 4개월 동안 치료했죠.” 올해 4월말 재개한 녹음작업은 7월말에야 완료됐다. 녹음을 모두 스물세 차례나 했으니 그 과정이 말마따나 형극이었다.

음반에는 놀량사거리, 서도시창과 서도좌창, 서도민요, 서도송서, 경기민요 등의 다섯 대목에서 확인되는 역전의 목청이 담겨있다. 음반에서 그가 가장 의미를 두는 것은 해묵은 숙제처럼 남아있던 서도송서, 그 중에서도 가장 까다롭다는 마지막 곡 ‘추풍감별곡’을 복원했다는 사실이다. 옛 명창들이 손도 못 대보고 죽었다는 그 소리는 박자도 음률도 없고 다만 텍스트만 남은 채 송서(음률을 넣어 글을 읽는 시창의 한 갈래)의 백미라며 풍문처럼 떠돌았던 곡이다. 성에 안 차 기진해 있다 다시 공부하고 녹음하길 반복해 서도송서를 완성했다.

이번 음반 작업으로 김수영, 김정연 등 서도 명창 스승들과의 특별한 만남도 결실을 보았다. “죽사 김수영 선생님한테 전해 받은 것을 내 나름대로 깼고, 나를 무릎제자로 키우신 김정연 선생님 은공을 조금이나마 갚는 거예요.” 수련 시절, 그는 앉아서 김정연 흉내만 냈다. “진짜 내 소리는 40대 중반 이후 독공으로 조금씩 완성했어요.”

특히 김정연이 사무치도록 그립다. 경기나 남도민요 쪽은 제자가 많은데 대중의 귀에 설익은 서도 소리는 배우려 들지 않으니 후계 문제로 고민하던 스승이었다. 그러던 중 “목 구성 좋은 천재”가 나타났으니 말 그대로 애지중지. 그러나 스승의 문하에 들어간 한명순은 그곳 생활이 답답해 열일곱 살까지 세 번이나 가출했다. 친구 집, 가발 공장 심지어 부산의 빵 공장으로 넉 달 동안 가출하기도 했다. 그 때마다 스승은 용케 알고 찾아 왔다. “내 성격을 못 이겨 입바른 소리를 곧잘 했는데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마음을 알게 돼 피눈물을 흘렸죠.” 남한의 서도소리 1, 2대가 벌인 사랑싸움이 징하다.

스승이 죽고 나자 호구지책에 급급했으나 족족 망하고 빚만 남더니 1998년 덜컥 반신불수가 덮쳤다. 농약도 마시고 목도 매달아 봤지만 안 죽어졌다. 소리 빼면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알고 지내던 한국고음반연구회 회원 김종철과 이자윤을 통해 1920, 30년대의 전설적 서도소리 명창들의 음원 연구부터 시작했다.

2009년 휴먼앤북스 대표이자 서도소리진흥회 이사장인 하응백이 ‘엮음수심가’ 등을 찾아내고 기획해 이번에 음반을 냈다. 내친 김에 큰 무대까지 만들었다. 음반 작업을 함께 한 허용업(피리ㆍ해금), 이광수(꽹과리), 피아니스트 미연 등의 협연으로 10월 3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02)6327-3535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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