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부모서 격리 아동 늘어나지만 쉼터는 열악… 그나마 전국 36곳뿐
한 곳당 지도원 2명이 맞교대 격무… 기재부는 예산안서 80% 덜어내
다섯 살 예은(가명)양은 2년 전 차디찬 겨울 집 밖에서 속옷만 입은 채 찬물을 뒤집어 썼다. 영문도 모른 채 바들바들 떨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예은이를 낳고 도망간 뒤로 칭얼대는 친딸에게 “정신 차리라”며 모질게 대했다. 보다 못한 누군가의 경찰 신고가 이어지면서 예은양은 낯선 이의 품에 안겨 낯선 아파트에 들어섰다. 2012년 11월 경기 학대피해아동쉼터였다. 아버지의 학대는 벗어났지만 쉼터에서의 생활이 넉넉지는 않았다. 밥만 근근이 삼키는 정도다. 그 흔한 과자 한번 제대로 먹지 못하는 형편이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29일 시행돼 가해 부모로부터 격리될 아동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지만 이들을 돌볼 쉼터가 열악하기 짝이 없다. 정부는 전국 36곳인 학대피해아동쉼터를 내년 15곳 늘릴 계획이지만 속사정을 알면 반길 일이 아니다.
예은양이 밥을 먹을 수 있는 것도 같은 처지인 또래(5)와 언니(12) 덕분이다. 쉼터에 머무는 3~8명의 아동 중 기초생활수급비가 나오는 아이들이다. 예은양은 자신을 방에 혼자 방치하고 일을 나가던 아버지가 부양의무자로 벌이가 있어 수급 대상이 아니다. 아버지는 지금껏 과자 한 봉지 값도 아동쉼터에 보낸 적이 없다.
허효정(25) 생활지도원은 “아이당 수급비가 38만540원인데 이를 받을 수 있는 수급대상은 많아야 2명 정도여서 평균 15만원만 식비로 쓴다”고 털어놨다. 국고 지원은 전화비와 관리비 등 운영비(월 24만원)와 직원 2명 인건비로 연간 4,400만원 수준이다. 지자체가 연장근무수당 등 쉼터 직원에게 지급한 비용을 빼고 아이들을 위해 지원한 건 올해 처음 지원한 난방비 월 20만원뿐이다.
경기 다른 아동쉼터에서 지내는 은호(10·이하 가명) 은화(6) 남매는 한끼 1,650원짜리 밥을 먹는다. 생활지도원 이세희(26)씨는 “시가 지원하는 생계비에서 하루 식비가 5,000원뿐”이라고 했다. 은호군이 학교 갈 때 버스비를 주지 못하고, 아직 기저귀가 필요한 예림(4·가명)이에겐 후원금을 쓴다.
7명 정원에 맞춰 정부 보조금은 아동당 월 20만5,800원씩 약 144만원이 나온다. 한때 피해아동들이 몰려 13명까지 입소했을 때 추가 비용은 온전히 쉼터가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7명보다 적으면 그만큼 연말에 반납해야 한다. 이씨는 “후원금이 없으면 아예 운영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후원 받기도 쉽지는 않다. 아동쉼터는 학대 부모가 언제라도 찾아와 아이를 내놓으라고 난동을 부릴 우려가 커 비공개로 돼 있고 대놓고 후원자를 모집할 수도 없다. 예은이가 머무는 쉼터에 월 1만~3만원씩 사비를 후원하던 지역 유치원ㆍ어린이집 5~6곳 원장의 인심도 올해는 끊겼다. 1명이 올해 1만원만 입금했다.
쉼터 한 곳당 2명이 맞교대하며 48시간 연속 근무하는 생활지도원들도 월 150만~180만원의 박봉에 시달린다. 기저귀 갈아주기부터 끼니 준비, 청소, 학습지도까지 도맡는 힘든 업무에 이 교사가 근무하는 1년 5개월 동안 6명이 못 버티고 나갔다. 이씨는 “(정부가) 상담원 증원 예산조차 안 주는데 우리가 뭘 바라겠느냐”고 자조했다.
최근 공개된 내년 아동학대 관련 예산 심의 결과를 보면 복지부는 쉼터 한곳에 2명인 생활지도원을 4명으로 늘리고 쉼터당 2억2,000만원의 예산을 요구했지만 기획재정부는 인력 2명에 지원금 4,300만원으로 대폭 깎았다. 그나마 올해보다 12% 늘어난 것이지만 국비 비중도 복지부가 요구한 50%에 못 미친 40%에 그쳐 가뜩이나 재정압박을 받고 있는 지자체의 지원이 불안하기만 하다. 아동보호기관과 관련 단체들은 “지원 예산을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이 아닌 일반회계에 편성하고 국비 지원을 늘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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