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치를 지켜볼 때 드는 의문 가운데 하나는 중도의 허약성이다. 주관적 이념 성향 조사 결과를 보면 ‘보수ㆍ중도ㆍ진보’는 대체로 ‘30ㆍ40ㆍ30’으로 이뤄져 있다. 요즘처럼 보수가 강세일 때는 ‘35ㆍ40ㆍ25’가 나오기도 한다. 중도의 비중이 이렇게 높은데 중도를 표방하는 정치세력은 상당히 취약하다. 왜일까.
우리 사회에서 중도의 비중이 높은 까닭은 무엇보다 한국 현대사의 특수성에 있다. 냉전분단체제 아래에서 진보의 정치적 활동은 불허됐고, 정치에 거리를 두려는 의도적 무관심이 증가했다. 이런 정치적 조건은 많은 이들에게 강경 보수나 급진 진보보다 온건 중도를 선호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이념을 구분짓는 주요 이슈에서 적잖은 국민들이 일관성을 갖는 게 아니라는 점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남북관계에선 보수적 강압정책을 지지하는 동시에 경제문제에선 진보적 재벌개혁을 지지할 수 있다. 또 보수적 시각에서 성장을 중시하면서도 진보적 시각에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할 수 있다. 이런 이들의 경우 보수나 진보보다는 중도가 자신의 이념적 정체성에 어울린다고 생각하게 된다.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중도인데도 그 힘이 상대적으로 작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 이념구도가 갖는 복합적인 특징에 있다. 앞서 말했듯 주관적 이념 성향의 구도는 중도가 두터운, 아라비아 낙타의 등과 같은 ‘단봉(單峯)형’ 구도다. 하지만 이념을 나누는 주요 이슈에 대해선 중도가 협소한, 몽골 낙타의 등과 같은 ‘쌍봉(雙峯)형’ 구도에 가까워진다.
예를 들어 2010년 사회통합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경제성장보다 분배가 우선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경우 성장을 중시하는 이들은 46.3%, 분배를 중시하는 이들은 32.8%에 달했고, 중간적인 응답을 한 이들은 20.9%였다. 대북관계, 공권력 사용, 환경 보호 등 이념을 가르는 주요 쟁점에 대해서도 ‘보수ㆍ중도ㆍ진보’의 구도는 중도가 취약한 ‘40ㆍ20ㆍ40’으로 나타났다. 당시 이 조사에 참여했던 나는 이런 맥락에서 한국적 이념 현실이 거시적 단봉형과 미시적 쌍봉형의 이중 구도를 이룬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이념 구도의 특징은 우리 이념갈등이 왜 이렇게 예각적이고 격렬한지를 설명해준다. 주요 이슈에 대해 보수적 시각과 진보적 시각은 확고한 지지를 갖고 팽팽하게 맞서는 반면, 그 둘을 완충하고 절충할 수 있는 중도적 견해는 상대적으로 허약하다. 상황이 이러하면 갈등의 중재자인 정당과 언론이 조정자의 역할을 맡아야겠지만 오히려 갈등의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있다.
지금 중도를 일방적으로 지지하려는 게 아니다. 이념갈등을 포함한 갈등으로 인해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는 우려를 말하려는 것이다. 사회갈등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지만, 지나친 갈등으로 인해 사회발전이 지체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어떤 이슈든 국민 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중요하다. 중도의 정치적 역할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정치적으로 중도층은 흔히 ‘산토끼’로 불린다. 보수와 진보의 고정 지지층이 ‘집토끼’다. 고정 지지층과 중도층 가운데 어떤 집단을 더 중시할 것인지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중도층 끌어안기’를 강조한 딕 모리스의 선거 전략이 빌 클린턴 정부의 등장을 가져왔다면, 고정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갈라치기’를 내세운 칼 로브의 선거 전략은 조지 부시 정부의 탄생에 기여했다. 주목할 것은 이런 갈라치기가 선거가 끝난 후 사회통합을 높여야 하는 국정운영에 부담이 되는 전략이라는 점이다.
이쯤에서 우리 정치 현실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언제부턴가 정부의 국정운영을 포함한 우리 정치는 선거 시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갈라치기에 익숙해 있다. 개별 사안에 대해 쌍봉형 구도가 두드러진다면 그 이념갈등을 완화하고 해소하는 게 정치의 본령임에도 51% 지지만 얻으면 된다는 발상으로 고정 지지층에만 호소하는 ‘절반의 정치’가 우리 정치의 자화상이다. 중도를 진심으로 껴안는 그런 정치를 과연 언제쯤 볼 수 있게 될까.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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