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성 최초로 중의원 의장을 지낸 도이 다카코(사진) 전 사민당 당수가 20일 효고현 병원에서 폐렴으로 별세했다. 향년 85세.
고인은 1928년 효고현 고베시에서 출생, 45년 교토여자전문학교(현 교토여자대학) 영문과에 입학했으나 평화주의와 헌법에 대한 강연을 들은 것을 계기로 법학에 관심을 갖고 49년 도시샤대 법학부에 편입, 박사과정까지 마쳤다. 졸업 후 헌법연구자로 변신, 자민당의 헌법개정 주장에 대항하는 등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했고 68년 사회당 입후보 제의를 받고 정치권에 뛰어들었다. 69년 효고현에서 첫 출마해 12선을 당선해 일본 사회당의 간판스타가 됐다.
86년 사회당 당수가 된 고인은 89년 소비세 반대 운동과 이른바 리쿠르트 사건을 선거 쟁점으로 내세워 도이 바람을 일으켰다. 당시 참의원선거에서 고인이 이끄는 사회당 소속 여성 의원 11명이 대거 당선되는 일본 정치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당시 일본 언론은 ‘마돈나 선풍’이라며 그를 치켜세웠다. 이 선거에서 사회당은 자민당의 1당 등극을 저지해 일본 정치사상 최초의 여소야대 정국을 만들어 냈다. 고인이 선거 후 언급한 “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발언은 지금도 일본 정치사에 남는 명언으로 남아있다.
여성이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언변과 업무능력은 자민당 장기집권에 염증을 느낀 일본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안 되는 것은 안 된다’는 소신과 원칙 아래 강한 승부근성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그는 ‘사회당 재건의 마돈나’ ‘평화헌법과 결혼한 여성’등의 별명과 함께 여성 파워의 상징이 됐다.
고인은 이라크 전쟁을 ‘미국의 군사적 침략행위’로 규정해 일본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을 적극 반대하는 등 평화를 주창했다. 93년 사회당 등 8개당이 연립한 호소카와 모리히로 내각이 출범하면서 여성 최초로 중의원 의장에 취임했다. 사회당은 96년 사민당으로 당명을 바꾼 뒤 그를 당수로 재추대했다. 그는 그 해 총선에서 ‘시민파정당’을 선언해 시민단체 피스보트 회원을 후보로 옹립해 당선시켰다. 하지만 노선 대립의 여파로 당 분열이 가속화하면서 기울어지는 당세를 회복하지는 못했다. 결국 2003년 중의원 선거에서 사민당이 6석에 그치며 소수정당으로 전락한 데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고 2005년 선거에서 패배해 정계를 은퇴했다.
고인은 낙선 후에도 “의원이 아니라고 정치활동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라며 전국을 돌며 평화헌법 수호를 위한 강연에 나서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사민당 명예당수로, 진보세력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하기도 했다. 일본 언론은 “평소 고인이 즐겨 부른 ‘마이 웨이’의 가사처럼 한평생 곧은 길을 걸었다”고 평가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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