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장기집권-푸틴 극동개발 위해 두 정상, 포기할 수 없는 카드
11월 APEC 정상회담 돌파구 주목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012년 12월 취임 후 넉달여 만인 2013년 4월 러시아를 방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쿠릴열도 4개섬(일본명 북방영토) 반환 교섭을 재개키로 합의했다. 두 정상은 이 자리에서 쿠릴열도를 둘러싼 영토 분쟁을 상호 수용할 수 있는 조건으로 해결하자는 데 견해를 보는 한편 외교 국방장관회담(2+2회담) 채널 가동, 에너지 분야 등 다방면에 걸친 경제 협력 강화 등도 약속했다.
쿠릴열도 문제 해결을 둘러싼 두 정상의 노림수는 다르다. 아베 총리는 일본의 영토 문제를 둘러싼 커다란 숙원을 해결하는 물꼬를 튼다는 의미가 있다. 반환 교섭이 제대로만 풀려준다면 아베 총리의 장기집권을 보장하는 비장의 카드가 될 수도 있다. 특히 최근 북한 납치 피해자 재조사 문제가 북한측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로 아베 총리의 장기 집권 시나리오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베 총리로서는 쿠릴열도 문제 해결에 더욱 집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푸틴 대통령은 낙후된 극동 지역 개발을 위한 일본의 경제적 원조가 절실한 입장이어서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쿠릴열도 반환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국의 셰일가스 혁명 여파로 중동산 석유 수입을 줄이자, 중동 국가들은 유럽국가(EU)에 석유 판촉에 나섰다. 상대적으로 러시아 천연가스 수출로가 막히자 푸틴 대통령은 일본을 새로운 천연가스 수출 대상으로 삼으려는 노림수도 있다.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아베 총리는 당시 교섭 재개를 대가로 40여개 회사 대표 등 120여명의 경제 사절단을 동행, 러시아 직접 투자를 전폭 지원하고, 러시아 극동 지역 에너지, 의료, 도시 개발 등에 사용할 2,000억엔 규모의 기금을 설립하는 양해각서도 교환했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쿠릴열도 반환 교섭은 올해 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림반도 침공을 계기로 꼬이기 시작했다. EU는 러시아 정부 관계자의 역내 자산동결과 여행금지를 발표하고 미국이 푸틴 대통령 측근의 자산동결을 발표하는 등 대 러시아 제재에 나선데 이어 일본의 동참을 촉구했다.
아베 총리는 2월 동계 올림픽이 열리는 러시아 소치를 방문, 푸틴 달래기에 나섰으나 쿠릴 열도 문제에 대한 협의를 계속하자는 기존 입장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아베 총리는 이 자리서 10~11월 푸틴 대통령의 일본 방문 약속을 얻어냈지만 여전히 방일을 둘러싼 일정은 잡히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 EU 등 서방국가들은 일본에 대러시아 제재 압력에 나섰다. 일본은 3월 러시아와의 비자발급 절차 간소화 협의 중단 등을 비롯, 러시아 정부 관계자 23명의 입국 비자발급 중단, 우크라이나내 친러시아 분리주의 지도자 등 40명에 대한 일본내 자산동결 등 대러시아 제재를 잇따라 취했다. 러시아도 즉각 러일 외무차관급 회담 개최를 연기하는 등 대일 압박을 지속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세를 둘러싼 위기에도 불구, 일본과 러시아의 정상회담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있다. 아베 총리와 푸틴 대통령은 21일 전화회담을 통해 양국간 대화를 계속하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아베 총리는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양자 정상회담을 개최하자는 제안도 했다. 일본에서 러일 정상회담을 갖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일본 언론은 “아베 총리가 미일관계 등을 의식, 대러시아 제재에 일부 동참하고 있지만 쿠릴열도 반환을 위한 러시아와의 협상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며 “푸틴 대통령도 서방국가의 경제 제재망에 균열을 만들기 위해 아베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라우스초ㆍ네무로(홋카이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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