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화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어제 소집한 국회 본회의에서 호소문만 읽고 개회 9분 만에 산회 처리하기에는 부담이 있었던 탓이다. 세월호 문턱을 넘지 못하고 의정이 계속 표류하고 있지만, 향후의 원만한 여야관계, 파트너십 회복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결정이다.
정 의장은 본회의 개회 후 호소문에서 “산적한 민생현안부터 처리하라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본회의를 열었다”며 “하지만 본회의를 며칠만 연기해 달라는 야당 요청의 진정성을 믿고 30일 본회의를 재소집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정 의장은 또 “어떤 경우에도 30일에는 모든 안건을 처리할 것”이라면서 “세월호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지만 이를 둘러싼 논쟁에 한없이 묶여 있을 수 없으니 주말까지 여야가 최종 합의해 달라”고 주문했다.
새누리당은 사실상 야당의 요구에 따른 정 의장의 결정에 크게 반발하는 분위기다. 이완구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사퇴 의사를 표명했고, 여러 여당 의원들이 “일방적 회의 진행”이라며 정 의장의 사퇴까지 요구했다. 민생법안 처리 전까지 세월호 협상은 없다는 말도 나왔다.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여야 합의가 유가족들의 반발 속에 야당의 파기로 두 차례나 무산되면서 19대 국회 후반기 들어 한 건의 법안도 처리하지 못하는 식물국회 상황이 계속돼왔다. 국정의 무한 책임을 진 여당 입장에서 언제까지 야당에 끌려 다녀야 하느냐는 불만이 나올 만하다.
하지만 이번 법안처리 유보 책임은 정 의장이 질 일도 아니고, 이완구 원내대표가 질 일도 아니다. 정치는 순리다. 무리를 해서 탈이 나지 않은 적이 없다. 여당의 단독 처리로 빚어질 정치 파국을 고려한다면 이번 법안처리 유보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의미가 있다. 이번에 처리가 보류된 90개 법안은 이미 여야 합의가 이뤄진 비쟁점 법안이다. 반면 정부조직법과 부동산을 비롯한 각종 경제법안 등 여야가 첨예하게 다투는 법안들이 상임위도 통과하지 못한 채 쌓여 있다. 이를 보더라도 정 의장이 대국적 견지에서 잘 인내했다.
국정의 최대 걸림돌인 세월호 문제와 관련해 유가족들도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25일 야당과의 협의에서 ‘진상조사위원회의 수사ㆍ기소권 보장이 되지 않는다면 진상규명 취지를 살릴 방안을 마련해 달라’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가 남은 기간 절충점을 찾지 못할 이유는 없다. 여야가 30일까지 쟁점인 특검 추천 방식과 진상조사위원회와 특검의 유기적 연계방안에 대한 합의를 끌어내도록 총력전을 펼쳐야 할 것이다. 정치의 미학을 보일 마지막 기회로 삼아야 한다. 유가족들도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여야 합의를 존중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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