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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가족 ‘하기’

입력
2014.09.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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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변두리에서 혼자 산 지 1년이 넘었다. 가족은 있다. 아내는 먼저 떠나 보냈지만, 아직 어머니와 두 아들, 두 형과 누나 등이 있다. 그러나 한 집에서 함께 살며 끼니를 같이 하는 식구(食口)는 없다. 그러니 식구와 가족은 전혀 다른 말이 돼버렸다. 부인과 아이들을 외국에 보낸 ‘기러기 아빠’를 비롯해 가족은 있어도 식구가 없는 친구들이 여럿이다. 저마다 사정은 달라도, 크게 보아 사회경제적 환경이 급변하면서 가족 인식이나 존재양태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 인류학자 조지 P. 머독은 가족을 ‘주거를 같이 하고, 경제적 협동과 자녀의 생산으로 특징지어지는 하나의 사회집단’이라고 정의했다. 혼인과 사회적으로 인정된 성관계에 기초한 부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의 양육, 공동생활 등 상식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가족관계의 요소를 간결하게 담았다. 핵가족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통용돼 온 이런 정의도 현실 변화 앞에서는 빛이 바랜다. 독거노인을 포함한 한 1인 가구, ‘각방 부부’,‘무자녀 부부’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 보건사회연구원 김유경 연구위원의 ‘가족변화 양상과 정책 함의’란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 1인 9.0%ㆍ2인 13.8%로 총 22.8%였던 1ㆍ2인 가구 비율이 2010년 48.2%(1인 23.9%ㆍ2인 24.3%)로 늘었다.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 변화도 가파르다. ‘결혼은 해야 한다’는 인식이 98년 89.9%에서 2012년 33.2%로 줄고, ‘자녀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도 97년 73.7%에서 2012년 46.3%로 줄었다. 혼인대비 이혼은 90년 11.4%에서 2013년 35.7%로 늘어 나 뚜렷한 ‘가족 붕괴’현상을 뒷받침했다.

▦ 일본에서는 90년대 중반에 이미 ‘가족 붕괴’가 논란을 불렀다.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의 회복하는 가족을 계기로 가족은 (저절로)되는 것이 아니라 ‘하는’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후지와라 도모미(藤原智美)의 가족을 하는 집에서 보듯, ‘가족 하다’나 ‘가족을 하다’는 말이 널리 쓰여왔다. 한동안 가족 내부의 갈등 극복과 화해가 초점이었지만 요즘은 ‘가족 할 자유’나 ‘합의제 가족’ 등 스산한 말이 자주 들려온다. 이래저래 식구가 그리운 가을이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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