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전문가들 참석 토론 "공교육 틀 벗어난 아이들에 다양한 기회 제공이 핵심 역할"
임신 학생에 산전 관리법 교육도, 美 대안학교는 전국에 6400개나
영국 남부 데번주에 있는 샌즈스쿨에서는 매주 수요일 특별한 회의가 열린다. 10~17세 학생과 교사 등 학교 구성원 전원이 참여하는 이 회의에서 학교 커튼 색깔과 규칙을 어긴 학생에 대한 벌칙을 결정하고 심지어 교사 채용, 학교 예산 분배도 논의한다. ‘영국에서 가장 민주적인 학교’로 불리는 곳, 27년 전 설립된 대안학교인 샌즈스쿨의 학교회의다.
샌즈스쿨 학생 75명과 교사 20명은 모두 평등하다. 교복은 없고 교사에게 이름을 부른다. 듣고 싶은 수업과 시험 과목은 모두 학생들이 직접 선택할 수 있다. 따돌림을 경험하거나 일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 극도의 자유주의자 부모를 둔 학생들이 모인 이 학교는 이처럼 자유롭고 민주적인 제도를 통해 학생 각자의 능력과 개성의 차이를 장점으로 변모시킨다. 25일 방한한 숀 벨라미 샌즈스쿨 교장은 “학생들은 자신의 잠재력을 계발하기 위해 원하는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며 “샌즈스쿨은 ‘대안학교’가 아니라 민주적 가치를 시행하는 ‘상식적인 학교’”라고 설명했다.
24~25일 교육부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주최한 ‘대안교육의 국제적 동향과 발전 방향 포럼’에서 미국 영국 독일 등의 대안교육 전문가들은 “획일적인 공교육의 틀 안에 담을 수 없는 학생을 낙오자로 만들지 않고 성장시키기 위해 대안학교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마틴 밀스 호주 퀸즈랜드대 교수는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공교육은 학생들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학생들의 차이를 인정하고 가능성을 계발하기 위해 다양한 대안교육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행, 빈곤, 임신 등으로 공교육 울타리를 벗어난 학생들에게 ‘두번째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대안학교의 중요한 역할이다. 영국 스코틀랜드 글라스고의 스미시크로프트학교는 어린아이들을 위한 보육원을 운영한다. 교사가 아닌 학생의 아이를 돌봐주는 곳이다. 이 학교는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하거나 아이를 키우는 14~19세 학생들을 위해 육아 교육을 실시해 산전ㆍ후 건강 관리, 아동 심리, 아동들과의 대화법 등을 가르친다.
우리나라 같으면 청소년에게 임신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올 법하지만 어린 부모를 학교가 내치지 않는 덕분에 영국 청소년들의 학업중단율은 극히 낮다. 질리언 매클러스키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는 “영국의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학생이 학교를 떠나는 비율은 1%도 되지 않는다”며 “학교를 떠나는 학생들의 원인을 파악하고 학교와 교육당국이 그에 맞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10년에야 대안학교에 법적 지위를 부여한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 덴마크 등 선진국들은 수십년 전부터 ‘교육의 다양화’ 차원에서 대안학교를 적극 설립ㆍ운영해 왔다. 미국의 공립 대안학교에 해당하는 차터스쿨은 현재 미국 전역 6,400개에서 275만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고, 덴마크에서도 전체 학생의 15%가 대안학교에 재학 중이다. 독일에서는 여러 대안학교 중 하나인 발도르프학교만 독일 내 233개, 유럽에 712개의 분교를 운영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54개의 대안 중ㆍ고등학교가 정부의 인가를 받았다. 비인가 학교는 200여개에 이른다. 이종태 한울고 교장은 “덴마크의 경우 학생이 32명만 되면 대안학교를 설립할 수 있고 정부가 학교 운영비 70%를 지원한다”며 “우리나라는 교사 수, 교육 과정, 건물 등을 따져 인가가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의 대안학교가 비인가 학교로 남아있는 데다가 인가가 되더라도 지원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안전 문제 등으로 대안학교를 쉽게 인가할 수는 없다”며 “인가 대안학교에 대해서는 현재 4,000만~5,000만원 수준인 지원금을 더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양진하기자 real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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