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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불행 당신의 선택인가

입력
2014.09.26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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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나타 살레츨 지음ㆍ박광호 옮김

후마니타스 발행ㆍ254쪽ㆍ1만6,000원

‘내 운명의 주인은 나’라는 말은 무엇이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고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은 그러니 더 노력하자고 다짐하게 만든다. 수없이 쏟아지는 자기계발서는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조언으로 이를 부추긴다. 일러주는 대로 하면 과연 그렇게 될까.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에서 슬로베니아 출신 철학자 레나타 살레츨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다는 ‘환상’은 우리를 더 불안하고 탐욕스럽게 만들 뿐 아니라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림으로써 사회구조적 문제를 은폐해 변혁을 가로막는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자본주의 영속화에 이바지한다고 지적한다. 자기계발서는 그런 환상을 강화할 뿐 자기계발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일례를 보자. 닷컴 기업들이 한창 잘 나가다가 거품이 꺼졌을 때 구조조정으로 해고된 젊은 직장인 이야기다. 고용주는 해고에 가책을 느꼈지만, 청년의 반응은 달랐다. 항의를 하기는커녕 뭘 잘못했는지, 어떻게 하면 다음 직장에서 더 잘할 수 있는지 사장에게 물었다. 그는 해고를 자기 탓으로 여긴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 선택은 사회적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모든 것은 내 선택에 달렸다는 믿음은 잘 선택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혹시 잘못 선택할까봐 불안해 하며 완벽한 선택을 하려고 노력을 거듭하는 이들 덕분에 자본주의는 불안을 먹고 자란다. 저자는 “자신의 모습에 죄책감을 느끼고 끊임없이 자기를 계발하는 일에 매달리는 동안 우리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전망을 잃어버리고 만다”고 지적한다. 개인의 책임만 강조하는 사회에서 자수성가는 칭송할 일이고 가난은 죄가 된다. 아무리 용을 써도 진창을 벗어날 수 없는 밑바닥 인생의 비극은 정상 참작의 여지가 없고 수치스런 일화일 뿐이다.

살레츨은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가 개인과 사회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탐구한다. 라캉의 정신분석학 이론, 영화와 TV 드라마 같은 대중문화 비평, 정신분석을 받으러 오는 환자들의 사례를 동원해 찬찬히 풀어간다.

캐나다 작가 윌 퍼거슨의 소설 ‘행복’은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자본주의 영속화에 이바지하는지 보여주는 우화다.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법을 알려주는 자기계발서에 빠진 사회에서 벌어지는 소동 이야기다. 그 책을 읽은 사람은 전부 예전 생활을 버린다. 옷을 간소하게 입고 화장품을 사지 않고 성형수술을 하지 않고 헬스클럽을 그만두고 자가용을 버리고 직장도 그만둔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다들 행복해지자 자본주의는 토대부터 흔들린다. 위기를 느낀 출판사와 사회는 책의 저자를 찾아 불행해지는 법에 대한 책을 쓰도록 권한다. 알고 보니 그 책은 여러 자기계발서를 짜깁기한 책이었다! 행복해졌다는 건 착각이었다!

자신의 선택에 무한책임을 지우고 그 무게에 괴로운 이들에게 저자는 “개인의 문제와 고통은 계급 사다리를 오르려는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하려 해선 안 된다”며 달리 조언한다. “사회 부정의에 대한 투쟁, 사회 구조를 바꾸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게 결론이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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