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절연층 보호 위해 납 피복 사용, 부식 안되고 비중 커 잘 가라앉아
무인로봇 원격조정으로 매설 작업, 만약의 사고 대비 30년주기 교체
2010년 처음 국내 기술로만 매설… '꿈의 전선' 초전도케이블 상용화
지난해 제주도에서 사용된 총 전력량은 5,755GWh였다. 이중 현지에서 생산된 전력량은 4,463GWh로, 전체의 71% 정도다. 그래도 60만명이 넘는 제주도민과 수많은 관광객들은 부족함 없이 전기를 사용했다. 전남 진도와 해남에서 제주까지 해저로 각각 100㎞나 깔린 송전용 해저케이블 덕이다. 심해에 묻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해저케이블은 이미 우리 생활과 산업 속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전선 기술의 최고봉
‘전선의 꽃’ ‘전선기술의 집약체’ 등으로 불리는 해저케이블의 속살을 엿볼 수 있는 곳은 국내에서 LS전선 동해공장이 유일하다. 지난주 찾은 강원 동해시 송정동 동해공장에서는 카타르로 수출할 해저케이블을 선적 중이었다. 검정색에 노란색 띠가 감긴 케이블이 운송선에 설치된 지름 25m짜리 턴테이블 위에 서서히 감기는 모습은 똬리를 트는 거대한 비단뱀을 연상시켰다.
작업자들은 대양을 건너는 도중 케이블끼리 늘어붙지 않도록 중간중간 석회가루를 뿌렸고, 아래쪽 케이블이 하중에 의해 상하지 않게 나무상자 형태의 더니지(dunnage)를 덧댔다. 턴테이블 한 개에 감기는 케이블 50㎞의 무게는 무려 3,800톤에 달하기 때문이다.
케이블 이동속도는 분당 약 8m. 한 가닥이 50㎞인 케이블 두 가닥을 실어야 하기에 24시간 쉼 없이 진행해도 선적에만 1주일 이상 걸린다.
교류전압(AC) 132㎸를 보내야 하는 카타르 수출 케이블은 지름이 19.3㎝다. 이 안에 도체인 구리와 절연층으로 이뤄진 전력선 세 가닥, 통신용광케이블 세 가닥이 들어가 있다. 가정용 220V는 전력선 두 가닥이면 되지만 송전용은 3상 전압이라 반드시 세 가닥이 있어야 한다. 이 세 가닥을 합쳐 50㎞ 길이의 해저케이블 한 쌍을 한번에 뽑아내 운송한 뒤 이어 붙여 100㎞짜리 완제품을 만드는 게 핵심기술이다.
50㎞가 한 가닥이라 만약 제작 도중 설비에 이상이 생기면 전체를 폐기해야 한다.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날아가기 때문에 제작공정은 늘 긴장의 연속이다.
같은 이유로 공장 입지도 중요하다. 육상 수송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바로 운송선에 실을 수 있도록 동해공장처럼 항만 옆에 바짝 붙어야 한다.
특별한 바다 속 환경
해저케이블은 얕게는 수십 미터에서 깊게는 1㎞ 이상인 바다 속에 매설된다. 육지에 깔리는 케이블보다 요구조건이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해저케이블 제작 때는 구리와 절연층을 보호하는 금속시스(피복) 재료로 납을 써야 한다. 지중 케이블에는 구리 알루미늄 납이 다 사용되지만 해저에서는 부식이 가장 안 되고, 비중이 커 잘 가라앉는 납만 허용된다.
케이블을 보호하는 강선외장도 필수적이다. 강선이 들어가야 포설선에서 해저로 케이블을 내릴 때 걸리는 기계적인 힘을 견뎌낼 수 있다.
매설은 무인매설로봇(ROV)을 이용한다. ROV를 원격조종해 땅을 판 뒤 케이블을 묻는 방식이다. 암반 등으로 매설이 어려우면 케이블 위를 돌이나 콘크리트로 덮는다. ROV의 작업속도는 한 시간에 약 200m다.
통신용 해저케이블은 손상될 경우 전화나 인터넷이 불통되는 정도의 피해가 생기지만 송전용은 도시 전체가 ‘블랙아웃’에 빠지는 재앙이 벌어져 반드시 묻어서 한다. 선박의 닻이나 어구, 조개나 상어 등 해양생물로부터 케이블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해저케이블을 단선이 아닌 왕복으로 2선을 까는 것 역시 블랙아웃을 피하기 위해서다.
케이블에 감는 노란색 띠는 매설 때 빛을 발한다. 파도와 바람 등의 영향을 감안해 해저의 정확한 위치에 케이블을 앉히는 게 중요한데 검정색의 보색인 노란색은 케이블 식별을 용이하게 한다. 노란색이 딱히 국제 규정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다. 많은 업체들이 노란색을 사용하고, 일부는 빨간색을 넣기도 한다.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심해의 혹독한 환경이 케이블의 내구성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해저환경에 따라 다르지만 해저케이블의 수명은 보통 30년으로, 지중케이블과 차이가 없다. 30년이 흐르면 케이블이 낡고 못 쓰게 돼 교체하는 것은 아니다. 안전성을 위한 내구연한이다. 김원배 LS전선 해저케이블 생산팀장은 “2000년대 중반부터 지중케이블 교체 시기가 도래한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 철거한 30년 된 케이블을 살펴보니 10년 이상 더 쓸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좋았다”며 “만에 하나 생길 지 모를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교체”라고 설명했다.
진화하는 해저케이블
최초의 통신용 해저케이블은 1800년대 중반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도버해협에 놓였다. 실패와 기술개발을 반복한 끝에 통신용 해저케이블은 대륙을 이었고, 지금은 바다 속에서 거미줄처럼 전 세계를 연결하고 있다.
보다 높은 기술이 요구되는 송전용 해저케이블은 1954년 스웨덴이 설치하며 인류 역사에 편입됐다. 통신 케이블은 태평양도 횡단하지만 송전용 케이블은 2008년 노르웨이와 네덜란드를 연결한 580㎞가 세계에서 가장 길다. 가장 깊이 매설된 케이블은 이탈리아에 있는데 수심이 1,650m다.
국내 최초는 1979년 전남 신안군 장산~자라 간에 놓인 1.7㎞ 길이의 해저케이블이다. 2010년 11월 전남 해남군 화원반도에서 안좌도까지 연결한 6.6㎞는 우리 기술로 완성한 첫 송전용 해저케이블이다. 현재는 제주도를 비롯해 섬에 전기를 보내기 위한 해저케이블 의 총 길이가 200㎞를 넘는다.
해저케이블은 이제 전기를 이동시키는 단계를 넘어 이제 가스와 물 등을 동시에 보내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일명 엄빌리컬 케이블(Umbilical Cable)이다. 국내에서도 만드는 엄빌리컬 케이블은 석유시추선, ROV 등에 사용된다.
‘꿈의 전선’으로 일컬어지는 초전도케이블은 송전용 해저케이블을 대체할 것으로 기대되는 미래의 총아이지만 상용화는 아직 멀었다. 현재 한국전력공사를 비롯해 세계 각국이 치열한 기술개발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손형수 한전 송변전개발처 차장은 “지상 초전도케이블 상용화까지 20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해상 풍력발전이 늘고 국가 간 전력융통을 위한 스마트그리드 구축 등 에너지산업의 흐름으로 볼 때 앞으로도 송전용 해저케이블 분야 발전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전망했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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