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 뮤지스; 그녀들의 서바이벌
아이돌 스타의 데뷔 전후 추적, K팝 비즈니스의 이면 그려내
순천
순천만이 품고 있는 구수한 풍광, 칠순 여성 어부의 인생 별곡
여성 아이돌 그룹과 칠순의 여성 어부. 대한민국 하늘 아래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극단의 사람들을 25일 개봉한 두 편의 다큐멘터리로 만나볼 수 있다.
‘나인 뮤지스: 그녀들의 서바이벌’은 K팝 산업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영화로 2010년 9인조로 데뷔한 여성 그룹 나인 뮤지스가 데뷔 전후 보냈던 1년여 시간을 따라간다. 아이돌 가수 기획사들이 쉽게 드러내지 않은 속살이 많이 담겨 흥미롭다. 기획사가 하나의 아이돌 그룹을 성공시키기 위해 얼마나 지독하고 가혹하게 훈련시키는지, 멤버들이 얼마나 많은 갈등을 겪으며 눈물을 흘리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나인 뮤지스 같은 경우는 10억대가 넘는 자금이 투입된 것”이라는 신주학 스타제국 대표는 늘 굳은 표정을 하고 멤버들을 바라본다.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 안무가는 “아파서 쉬기는 뭘 아파서 쉬어” “억울하면 떠라” “열심히 할 자신 없으면 그만두라”고 몰아세운다. 데뷔를 앞둔 나인 뮤지스 멤버들은 기획사 사장과 매니저들만큼 좌불안석이다. 자신은 목숨 걸고 하는데 다른 멤버들은 억지로 하는 것 같아 속상해 하기도 하고, 연습 도중 상처 받고 연락도 없이 잠적하는 멤버도 있다.
밴을 타고 함께 이동하다 교통사고를 겪은 멤버들은 깁스를 한 채 연습에 참여하고 고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혜미는 “진통제 맞으면서 (연습)하라고 했던 사람들에게 아프다는 말을 못하겠다”며 울먹인다. 은지는 “예능이든 뭐든 빨리 떠서 혼자 다니고 싶다”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멤버 중 가창력이 가장 뛰어난 세라는 데뷔하고 얼마 지나 허탈한 표정으로 이런 말을 남긴다. “데뷔 전에는 인간다움, 인간성, 정 이런 게 공존을 했어. 그런데 지금은 없어.” 현재 나인 뮤지스엔 원년 멤버 아홉 명 중 민하, 혜미, 이유애린(혜민)만 남아 있고 6인조로 바뀌었다.
이학준 감독은 “아이돌 스타 산업이라는 건 스타가 되고자 하는 욕망, 스타를 만들어 명예와 부를 누리고자 하는 욕망, 소녀들의 노출과 춤, 노래를 요구하는 우리네의 욕망이 만들어낸 비즈니스 현장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나인 뮤지스’가 인간의 욕망에 다가가는 영화라면, ‘순천(順天)’은 제목처럼 하늘의 뜻을 따르는 영화다. 이홍기 감독이 순천만을 터전 삼아 평생 어부로 살아온 칠순의 여인 윤우숙씨의 일상을 담았다. 영화는 자연 다큐멘터리처럼 순천만의 자연과 생명을 그리는 한편 윤씨와 남편, 주민들의 삶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본다. 전남 시골 마을의 진한 사투리가 순천만이 품고 있는 삶의 향기를 관객에게 전한다.
친구처럼 지내는 어촌계장에게서 “피부가 돼지껍데기 같다”는 농을 들으며 “전국구로 아픈 몸”을 이끌고 남편을 먹여 살리기 위해 매일 고깃배의 노를 저어야 하는 윤씨의 고단한 일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순천만의 아름다운 풍광과 뒤엉켜 하나가 된다. 순천만이 곧 윤씨의 삶이고 윤씨의 삶이 곧 순천만의 일부인 것이다.
영화를 관통하는 것은 술 때문에 병이 든 남편을 보살피는 윤씨의 무뚝뚝하면서도 진한 애정이다. 남편이 죽으면 울 거냐는 어촌계장의 물음에 “옛날 말에 쿠라쿠라라 그러제, 쿠라쿠라 좋쿠라 근다네”라며 껄껄 웃지만 남편이 죽고 난 뒤 그는 영정 앞에서 통곡하며 노래한다. 세상의 외진 곳에서 묵묵히 남편과 자식을 먹여 살린 모든 어머니의 모습이 윤씨에게 투영되는 순간 눈물이 쏟아지는 걸 주체하기 힘들다. 윤씨가 울먹이며 부르는 노래는 세상 그 어떤 노래보다 사무치다. “아이고 아이고 뒤도 돌아보지 말고 잘 가소 / 날 보고잡단 소리 하지 말고 잘 가소 / 장에만 갔다 늦게 와도 뭣헌다고 인자 오냐고 해쌌드만 / 나를 어찌 잊고 가능가 / 언제 나한테 와서 욕 얻어 먹을랑가.”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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