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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개작두'와 '싸가지'

입력
2014.09.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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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국내에서 크게 인기를 끌었던 대만 드라마 ‘포청천’. 광명정대, 공평무사한 판결로 이름이 높았던 송나라 때 판관이다. 당시 아래위 할 것 없이 공직자 부패 문제가 심각했던 터라 드라마를 보면서 속이 시원하다는 국민이 많았다. 추상같은 판결과 함께 던지는 포청천의 마지막 호령은 드라마의 백미였다. “개작두를 대령하라.”

▦ 포청천이 활약했던 송나라 때의 수도 개봉에는 사형 도구로 썼던 작두들이 지금도 전시돼 있다고 한다. 황제가 하사한 것이다. 작두 앞 대가리 형상에 따라 쓰임이 달랐다. 개 모양의 작두는 일반백성이 죽을죄를 지었을 때 썼다. 관료에게는 호랑이작두, 황족이나 황족의 피를 이어받은 자에게는 용(龍)작두를 썼다. 신분에 따라 죽을 때도 품위를 지켜준 것이다.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면 역모죄를 저지른 귀족이 호랑이작두를 받게 되자 자신은 불세출의 영웅이라며 용작두를 요구한다. 이에 포청천은 간웅에게 어울린다며 개작두로 응수한다.

▦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은 드라마 속의 주인공과 닮은 모습이라 포청천이란 별명이 붙었다. 누란지세(累卵之勢)의 당을 일으키기 위한 구원투수로 등판한 뒤 문 위원장은 해당(害黨) 행위를 하는 의원들을 “개작두로 치겠다”고 했다. 문 위원장은 “정당은 규율이 생명”이라며 이 말을 썼다고 한다. 최근의 내홍 과정에서 노출된 당내 강경파의 지도부 흔들기, 이면에 내재한 계파주의를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당을 나가고 싶으면 그렇게 해주겠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 진보논객인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한 칼럼에서 여우 같은 지혜로 사회를 실질적으로 바꾸려는 노력보다 사자처럼 포효하면서 자신의 존재증명, 정체성, 소신을 알리는데 주력하는 진보를 ‘싸가지 없는 진보’라고 했다. 세월호와 관련한 야당 강경파의 처신과 비토(veto) 정치를 문제 삼은 것이다. 유능한 야당의 조건으로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말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각과 일맥상통한다. 문 위원장이 용작두, 호작두를 놔두고, 개작두라고 한 걸 보면 당을 고려하지 않는 막가는 행태가 오죽 눈꼴 사나웠을까 싶다. 하지만 그럴 배짱을 가지려면 포청천처럼 철면무사(鐵面無私)해야 한다. 공평하고 사사로움에 구애됨이 없어야 야당의 혁신을 이끌 수 있다.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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