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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돈 들지 않는 복지제도의 지름길

입력
2014.09.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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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특별법 논란을 지켜보면서 문득 몇 장면이 떠올랐다. 그날 현장에 가서 유족들을 위로하고 관련 공무원들을 질타하면서 신속한 구조와 유가족 지원을 독려하던 모습. 청와대로 찾아온 유가족들과 슬픔을 나누던 모습.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면서 비통해 하던 모습. 지금 우리 대통령의 모습이었다. 거짓말, 헛말이 난무한다는 선거판에서 워낙 ‘약속과 신뢰’의 코드로서 다가온 그분이었기에 그 모습의 진정성을 많은 국민이 믿었다.

그러나 두 차례 선거를 통해 확인한 이른바 ‘국민의 뜻’ 이후에 그때 그분의 모습은 더 이상 찾을 수 없다. 그런데 투표율과 득표율을 감안할 때 아무리 양보해도 그 국민의 뜻은 ‘부동의 지지층 40%’ 밖에서는 찾을 수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지하는 국민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는 심정은 이해하지만, 침묵하고 좌절해 있는 나머지 국민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4ㆍ16 세월호 참사는 물리적 안전 뿐 아니라 국가의 국민보호 체계의 무능력을 만천하에 드러낸 역사적 사건이다. 한 정권에서 끝낼 수 없는 문제를 드러냈다. 그래서 국가안전처 신설 자체가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 사회보장, 국방, 외교, 정치, 경제 모든 분야에서 국가의 국민보호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국가 자체를 개조ㆍ개혁하는 계기를 잡아야 한다. 특별법 제정 논란 속에 2014년 4월 16일의 의미를 유족만의 것으로 축소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빨리 잊는 부동의 지지층’ 덕에 국가개조 약속은 잊고 유족과 유병언 일가 문제로 말을 바꾸고 있다.

이런 과정을 보면서 갑자기 궁금해졌다. 선거 때 했던 약속은, 그러면, 어떻게 되었는가? 그때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이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음은 누구도 부인 못할 것이다. 그래서 18대 대통령 선거공약집을 다시 읽어보았다. ‘기초보장 사각지대 완화, 맞춤형 빈곤정책 대상 확대, 기초연금 도입…’ 등 복지분야 공약은 논쟁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실천한 것도 있고 앞으로도 실천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도 있을 듯하다. 그런데 경제민주화는 어디로 갔는가?

많은 사람들이 사회복지를 일부 빈곤층과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이른바 소비성 급여를 제공하는 미시적 의미로 이해한다. 그러나 복지국가를 만드는 사회복지제도는 전국민 대상 사회보장제도와 사회서비스를 토대로 한 거시적 의미를 더 크게 갖는다. 전자를 선별적 복지, 후자를 보편적 복지라고 부르면서 논쟁도 많았다. 그런데 선별적 복지 자체만으로 이룩한 복지국가는 없다. 미국? ‘복지후진국’ 미국을 이상형으로 생각한다면 모르겠지만. 선별적 복지제도 성격을 강하게 갖는 영국도 국민건강서비스(NHS)라는 대표적 보편 복지제도를 갖고 있다. 유럽 대륙 복지국가의 보편적 복지 이야기는 더 이상 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보편적 복지를 하려면 돈이 든다. 그 재원 조달 근거를 둘러싸고 증세 논쟁도 벌어진다. 한쪽에서는 서민증세ㆍ부자감세라 하고 다른 쪽에서는 부자증세라 한다. 그런데 이 논쟁 속에서 또다시 잊어버린 것이 있다. 다시 묻는다. “경제민주화는 어디로 갔는가?”

박근혜 당시 대통령 후보 공약집에는 복지공약 실천을 위하여 대규모 복지 예산을 제시했다. 그런데 그 공약집에서 경제민주화 예산은? ‘0원’이다. ‘경제민주화, 예산 소요 없음’이다. 당연하다. 사회복지제도를 확대하면 돈이 들어가지만 경제민주화는 공약대로 실천해도 돈은 한 푼도 안 들어간다. 하지만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실천하면 자연스럽게 부자증세가 이뤄지고 따라서 복지 재원 마련도 쉬워진다. 그렇게 해서 국민들에게 지급된 사회복지급여는 가계소비를 촉진시켜 다시 경제성장에 기여한다. 이것이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 구조’이다. 이런 의미에서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항상 함께 가야 하는 개념이다.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쥐어짜는 정책으로는 ‘선별적 부스러기 복지’밖에 할 수 없다. 경제민주화 약속은 저버리고 부자증세 한다고 강변하니 믿을 수가 없고 누구를 위한 민생을 이야기하는지 의심스럽다. 고용없는 성장 시대에 대한민국호를 제2의 세월호로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했던 약속만 지키면 된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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