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술자리에서 오랫동안 일본문제를 공부하고 고민해온 선생님들 앞에서 나는 겁도 없이 이런 소리를 했다. 그것은 오래전부터 머릿속에 들어와 있던 생각이었다. “한일간 역사인식의 문제가 고약한 것은, 거기에 국가의 위선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한국 정부가 가장 손쉽게 국민의 지지나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일본과 각을 세워서 옥죄고 윽박지르는 것 아닌가요. 그러니까 우리 정부는 사실 일본이 위안부나 독도 문제 같은 역사적 혹은 외교적 사안을 우리의 요구대로 완전하게 청산해주는 것을 바라고 있지 않은 것 같아요. 만약 일본 정부가 우리의 요구를 100퍼센트 받아들여 역사적 과오를 사죄하고 보상하고 법적인 조치를 취해버리면 더 이상 우리 정부는 일본을 몰아세울 수 있는 명분이 없어지니까요. 우리 정부는 우파나 좌파 정권 할 것 없이 역사적 피해자로서 ‘요구하고 윽박지를 수 있는 수 있는 권리’를 계속 유지하면서 그것을 ‘전가의 보도’처럼 다음 정권에 물려주고 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들은 그냥 고개만 끄덕이셨는데, 나에겐 그것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작은 동의의 뜻이라고 생각됐다. 부끄러워서 말해버린 것을 조금 후회했다. 내 생각에 오늘날의 정의는 실현되거나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전유하거나 선취한 세력에 의해 다만 표현되고 있을 뿐인 것 같다. 그렇다면 정의 역시 하나의 장르로 전락한 것이 틀림없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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