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권유로 낸 음반 1만장 판매
이번엔 전국 순회 리사이틀 시작
인간으로, 아버지로 만든 음악 편지
다음 음반엔 아이들 위한 곡 삽입
25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마리아홀에 미리 준비된 뵈젠도르퍼 피아노에서 슈베르트의 즉흥곡이 흘러나왔다. 더러는 팝송의 선율로도 알려졌을 만큼 일반의 정서에 쉬 다가서는 클래식 소품이다. 피아노 앞에 앉은 정명훈(61)은 더 없이 편안한 모습이었다. 내년까지 이어질 피아노 리사이틀의 시작을 알리는 자리였다.
정씨는 40여 년 만에 이뤄지는 전국 순회 리사이틀에서 세계적 레이블 ECM에서 지난해 발표한 ‘정명훈, 피아노’ 음반에 수록된 곡들을 주로 들려줄 계획이다. 그는 이날 플래시의 봇물 앞에서 과거를 되새기듯 담담하게, 때로는 격정적 지휘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표정으로 준비된 곡들을 연주했다.
요즘은 지휘자로 주로 활동하고 있지만 사실 그는 다섯 살 때 피아노로 음악을 시작했다. 열 다섯 때 누나들과 정트리오의 일원으로 외국 연주 여행에 나섰고 스물한 살 때인 1974년에는 차이콥스키국제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2위를 차지했다.
정씨의 이번 순회 공연은 ECM에서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는 둘째 아들 정선씨가 부추겨 성사됐다. “지난해 아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정명훈, 피아노’ 음반을 냈더니 이번에는 아들이 순회 리사이틀을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더군요.” 정씨가 이번 공연을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인간으로, 아버지로, 할아버지로 임해 만드는 음악적 편지”라고 표현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발매 9개월 만에 1만장 판매를 돌파한 이 음반의 제작사인 C&L뮤직의 최석구 대표는 이 자리에서 “클래식 시장이 어려움에 처해있어 더욱 빛나는 성취”라며 플래티넘 디스크를 증정했다.
정씨가 연주한 곡 가운데 드뷔시의 ‘달빛’은 놀랄 만큼 유려했다. 정씨는 이 곡을 달빛을 뜻하는 ‘루아’라는 이름의 둘째 손녀를 위한 선물이라고 소개했다. 슈베트르의 ‘즉흥곡 G♭ 장조’를 연주할 때는 운집한 사진 기자들에게 “이건 찍지 말라”고 하면서도 “음반 수록곡 중 가장 깊이 있다고 생각하는 곡”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공연을 앞두고 뵈젠도르퍼 그랜드 피아노를 새로 구입한 정씨는 “피아니스트는 연습을 멈출 수 없는 운동 선수”라면서 녹슬지 않은 실력의 근거를 댄 뒤 “자꾸 하다 보니 옛 생각이 떠올라 더욱 빠져 들었다”며 전국 순회 투어의 실황 음반 계획을 내비쳤다.
“다음 음반은 아이들을 위한 레퍼토리로 전반부를, 브람스 쇼팽 등의 정식 피아노곡으로 후반부를 짤 계획이에요.”
지휘자 정명훈과 피아니스트 정명훈이 협연한다면 어떤 곡이 가장 좋을까.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 아닐까요. 지휘자와 피아니스트가 참으로 동등하거든요.”
10월 5일 창원 성산아트홀 대극장에서 길을 떠나는 이번 리사이틀은 대구 시민회관(10월 12일), 서울 예술의전당(12월 27일), 고양 아람누리(2015년 1월 10일) 등지로 이어진다.
순회 연주에서 생긴 수익금은 2008년 설립한 사단법인 미라클오브뮤직에 기부할 계획이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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