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평안을 책임진다 하여 고려 왕건이 병참 마을을 天安 명명
옛길 있던 곳 '삼거리공원' 됐지만 고속철ㆍ전철 등 여전히 사통팔달
흥타령춤축제ㆍ농기계박람회 등 즐길거리와 볼거리도 풍성
“천안삼거리 흥~~, 능수야 버들은 흥~~, 제멋에 겨워서~~, 휘늘어졌구나 흥~~.”
정말 편안하게 흥얼거려지는, 저절로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고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노랫가락이다.
하늘 아래 가장 편안한 곳이라고 했던가. 천안(天安)은 하늘도 편하고, 땅도 편하고, 더불어 사람도 편한 ‘천하대안’의 고장으로 불리운다. 천안은 고려 태조 왕건의 후삼국통일 병참기지였던 곳으로 이 고을이 편안해야 천하가 평안해진다는 왕건의 말에 따라 천안도독부가 설치되면서 그 이름을 얻게 됐다고 전해진다
천안 하면 저절로 삼거리란 단어가 따라 붙는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삼거리일 것이다. 근대의 문명이 철로와 신작로를 놓아 기차와 자동차가 굴러다니기 전에도 이 땅엔 큰 길들이 있었다. 한양에서 하나로 내려온 큰 길은 중간에 영남대로와 호남대로로 갈라진다. 바로 그 삼남대로가 만나는 분기점이 천안삼거리다.
한양에서 경상도와 전라도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었다. 당시 지방 발령을 받은 관리들의 호사스러운 행차가 지나가기도 하고, 청운의 꿈을 품은 선비가 과거를 보러 가다 들르고, 팔도의 장터를 떠돌던 장사치들이 모여들던 곳이다. 삼거리에 형성된 주막거리는 전국에서 몰려드는 이들로 언제나 흥청거렸다.
사람들이 스쳐가는 곳에는 언제나 만남과 이별의 정한이 애달프게 서려 있기 마련이다. 천안삼거리에도 능수버들에 얽힌 옛 이야기가 여러 버전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옛날 충청도에 살던 유봉서라는 홀아비와 그의 딸 능소에 대한 설화가 대표적이다. 홀아비 유봉서는 변방에 수자리(국경을 지키는 병사)를 가게 되자 어쩔 수 없이 어린 능소를 삼거리 주막에 맡기고 가면서 버들가지를 하나 꽂고 갔다. 오랜 세월이 지나 돌아와 보니 버드나무가 자라 아름드리 나무가 되어 있고 그 아래 아리따운 처녀가 된 능소가 기다리고 있어 부녀는 감격의 상봉을 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때부터 ‘능수버들’이라는 이름이 생겨나고 삼거리일대가 능수버들로 에워 쌓였다는 설화다.
다른 하나는 한 젊은 선비와 삼거리 주막 기생의 애틋한 사랑이야기이다. 전라도 고부땅에서 과거를 보러 올라가던 선비 박현수가 삼거리 주막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밤이 되어 잠을 청하는데 어디선가 청아한 가야금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능소라는 어여쁜 기생이 타고 있었다. 하룻밤에 백년가약을 맺은 박현수는 과거에 장원급제해 돌아왔고 흥이 난 능소가 가야금을 타며 흥타령을 읊조렸다는 것이다.
또 다른 설화는 수자리를 떠났던 아비와 능소가 끝내 만나지 못하고 능소가 기다림에 지쳐 쓰러진 자리에 능수버들이 자라났다는 것. 혹은 같은 이야기 줄기에 아비 대신 선비 박현수가 들어가 있기도 한다. 어떤 설화는 아비와 선비의 설화가 뒤섞여 춘향전과 비슷한 줄거리로 구성돼 전해지기도 한다.
지금 그 천안삼거리는 남아있지 않다. 철길이 뚫리고 신작로가 놓이고, 고속도로 등 또 다른 넓고 반듯한 길들이 주변에 거미줄처럼 깔리며 옛 삼거리는 사라지고 말았다. 그 자리엔 작은 표지석만 남아있다.
대신 바로 옆에 조성된 ‘삼거리공원’이 전국에서 천안삼거리를 찾아온 사람들의 발길을 맞고 있다. 천안시는 1974년 삼거리를 기리는 공원을 만들고 시민들의 쉼터로 삼았다. 화축관의 문루였던 영남루가 서있고, 연못 주위론 휘늘어진 능수버들이 기다란 초록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예전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버드나무는 요즘엔 좀체 만나기 힘들다. 가로수로 많이 심어졌던 버드나무는 꽃가루가 날리는 4,5월 나무가 내뿜는 솜뭉치들이 도로 위를 떠도는 것 때문에 가차없이 베어져 나갔다. 풍성한 나뭇가지가 대로변 상점의 간판을 가리는 것도 점포 주인들에겐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능수버들의 고장 천안에서도 도심에선 쉽게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일부 전문가들은 버드나무가 봄철 내뿜는 하얀 솜뭉치는 꽃가루가 아니라 씨앗이 붙어있는 솜털로 알레르기성 질환과는 무관하다고 이야기 한다.
공원에선 ‘능소와 아버지, 박현수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테마 길을 걸으며 반갑게 능수버들을 만날 수 있다.
천안삼거리는 없어졌지만 천안삼거리와 능소 이야기는 10년 전부터 시작된 ‘천안흥타령 춤축제’를 통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축제는 흥타령을 현대 감각에 맞게 접목, 다양한 춤과 음악으로 버무린 경연 형식으로 진행된다. 또 4년 주기로 열린 ‘국제농기계자재박람회’와 ‘천안국제웰빙식품엑스포’는 전국은 물론 외국인들까지 불러 모아 천안삼거리를 알렸다.
10월 29일 ‘2014 대한민국국제농기계자재박람회’가 이곳에서 열린다. 38개국 400여개 농기계 관련 기업이 참여, 25만명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박람회 기간 국제 농업기계 심포지엄, 농기계교육 훈련사업 워크숍, 에너지이용 효율화 사업 사례 발표회, 농산물 산지유통센터사업 사례발표 등 학술회의도 열린다. 2009년과 2013년 천안국제웰빙식품 엑스포에는 매회 70만명의 관람객이 몰렸다.
삼남대로의 중심이었던 교통요충지로서 천안의 위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고속철도, 고속도로, 전철 등을 이용한 사통팔달의 접근성은 더욱 확대됐다. 고속도로를 기준으로 서울기점 83.6㎞에 위치한 천안은 수도권의 배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인구 65만명으로 전국 10위권 규모의 대한민국 중심도시로 성장했고 13개 대학에 7만여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는 젊음과 열정이 넘치는 활력의 도시이기도 하다. 천안이 반도체, 자동차부품, 전기·전자제품 등 3,600여개의 기업에 13만5,000여명이 종사하고 있는 첨단 산업의 메카로 자리잡게 된 데엔 천안삼거리에서 퍼진 흥타령의 흥겨운 기운이 크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천안=이준호기자junh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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