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어 "경제살리기 도움 되면…" 재벌비리 무관용 원칙에 찬물
"靑과 조율 뒤 여론 떠보기" 분석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경제 살리기’를 명분으로 삼아 현재 구속수감돼 있는 일부 대기업 총수들에 대해 사면이나 가석방 등 선처 가능성을 시사해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주요 비리 기업인들에 대한 사법부의 예외 없는 중형 선고 등을 통해 이제 막 자리잡으려 하는 ‘재벌 총수 비리 무관용’ 원칙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지적이다.
황 장관은 24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경제에 국민적 관심이 많으니 경제살리기에 도움이 된다면 일부러 (기업인들의 사면이나 가석방을) 차단할 필요는 없지 않나”라고 밝혔다. 이어 “기업인이라고 가석방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지금은 (가석방 같은) 그런 검토를 심도 있게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잘못한 기업도 부당한 이익을 사회에 충분하게 환원하고, 일자리 창출과 경제살리기에 헌신적 노력을 하며, 국민들의 여론이 형성된다면 다시 기회를 드릴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비리 기업인들이 ‘투자’ 약속을 한다면 다시 경제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가석방 등 선처 방안을 검토한다는 말이다. 현재 실형이 선고된 주요 대기업 총수는 최태원(징역 4년 확정ㆍ수감 중) SK그룹 회장과 이호진(징역 4년 확정ㆍ보석) 태광그룹 회장, 이재현(항소심서 징역 3년 선고?구속집행정지) CJ그룹 회장 등이다.
이 같은 황 장관의 발언은 최근 재벌 비리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결 경향은 물론,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내건 “기업인들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겠다”는 공약과도 사실상 배치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단 한 차례 단행한 특별사면(올해 1월)에서 생계형 범죄만 대상으로 했을 뿐, 기업인이나 정치인 등 사회지도층은 배제했다.
그러나 평소 박 대통령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황 장관이 대통령의 뜻과 무관하게 기업인 선처를 암시했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오히려 경제살리기에 박 대통령이 사활을 걸고 있는 현 상황에서 청와대와 조율을 거친 뒤 국민 여론을 떠 보기 위해 나온 발언으로 여겨진다.
이를 두고 ‘유전무죄 관행으로 회귀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참여연대 이지현 시민감시팀장은 “솜방망이 처벌만 받았던 재벌들에 대해 최근 그나마 원칙대로 형량이 나오고 있는데 경제상황을 핑계로 다시 후퇴할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법부의 판결을 행정권력이 무력화하려는 측면도 있어 보인다”고 꼬집었다.
법무부 관계자는 “‘특혜 없는 공정한 법 집행’ 기조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며 “원칙에 부합되고 요건이 갖추어질 경우 누구나 가석방 대상이 될 수 있고, 기업인이라는 이유로 특별히 배제되는 것은 아니라는 원론적인 얘기”이라고 해명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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