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수 시인 네 번째 시집 펴내
인터넷 강국이란 명성은 모두의 손에 돌멩이를 하나씩 쥐어 주었다. 무슨 일이 터질 때마다 우리는 돌을 던진다. 어떤 이는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어떤 이는 미숙하게 이곳저곳 아무 데나. 여기 돌멩이를 움켜쥐고 주춤대는 자가 있다. 이런저런 망설임으로 평생 돌 한 번 던져보지 못하고, 그러다 결국 돌멩이와 친해져 버리고 만 손택수 시인이다.
그의 네 번째 시집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창비)가 나왔다. 10년 간 일했던 실천문학사를 그만두고 나와서 낸 첫 시집이다. 출퇴근의 쳇바퀴를 도는 틈틈이 턱 밑까지 차오른 시어들을 급하게 휘갈긴 메모가 예순 두 편 시의 밑바탕이 됐다.
시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는 멈칫거림이다. 발에 땀 나도록 뛰어도 돌아오는 건 욕 밖에 없는 직장인의 비애 속에서, 마음으로 의지했던 육친의 죽음 앞에서, 쌍용차 희생자 분향소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화단을 만드는 정부의 행태 앞에서 시인은 줄곧 멈칫댄다. “사연도 모르고 마냥 해사하게 피어난 꽃들이라니 / 하긴, 방학 동안 철거 용역 알바를 하고 / 학비를 마련하는 대학생들도 있다고 한다…그래도 그렇지 한창 푸를 나이에 철거 용역이 뭔가 / 제 가난한 어미 같은 이의 집을 부수며 살아야 할 이유라는 게 뭔가 / 외면하다가도, 벗어날 수 없는 처지와 그 발버둥을 헤아리면 / 나는 함부로 돌멩일 던질 수가 없는데”(‘꽃들이 우리를 체포하던 날’ 일부)
영문도 모르고 분향소 자리를 차지한 꽃을 향해 “아무래도 꽃의 죄까지 엄히 따져야 할 시대가 닥친 모양”이라고 말하는 시인은, 그러면서도 끝내 엄한 표정을 짓지 못한다. 이 망설임은 언뜻, 남 일에 개입하기 꺼리는 이들이 방패 삼아 차리는 예의 같아 보이지만 실은 그가 매우 적극적으로 망설임을 일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내게도 공연한 일들이 좀 있어야겠다 / 일정표에 정색을 하고 붉은 색으로 표를 해놓은 일들 말고 // 가령, 태풍이 올라온다는 소식에 모종대를 손보는 노파처럼 / 곧 헝클어지고 말 텃밭일망정 / 흙무더기를 뿌리 쪽으로 끌어다 다독거리는 일…별 뜻도 없이 고집스레, 내 눈엔 공연한 일들에 노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으니 // 이상하지 않은가, 나는 이 쓸모 없는 일들 앞에서 자꾸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 세상에는 값지고 훌륭한 일도 많다지만” (‘공연한 일들이 좀 있어야겠다’ 일부)
장마철 잠시 그친 비를 틈 타 은행잎을 쓸고, 치우고 치워도 다시 쌓이는 눈을 청소하는 이들에게 눈길을 주며 시인이 얻고자 하는 건 무엇일까.
“애도를 빨리 해치우면 사람은 괴물이 됩니다. 어찌 보면 죽은 자들, 사라진 것들에 대한 애도를 제대로 하지 못해 우리 삶이 불행해진 건지도 모르겠어요.”
이번 시집을 준비하면서 시인은 죽음을 겪었다. 2012년 그의 정신세계의 모태였던 외조모가 타계했고 열흘 후 부친마저 세상을 떴다. 정신의 대들보가 무너진 폐허에서 시인은 도망치지 않고 자리를 틀었다. 슬픔의 부피만큼 슬퍼해주리라는 결단이다. 슬픔과 실패와 애도에 쓸 시간을 훔쳐 ‘힐링’에 사용하는 세대로선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시대가 완전히 망각한 멈칫거림을 거름 삼아 시인은 꽃을 피운다. 희생자들의 죽음을 은폐하는 꽃이 아닌 숲 전체를 뒤흔드는 꽃이다.
“꽃을 / 참는다 // 다들 피우고 싶어 안달인 꽃을 / 아무 때나 팔아먹지 않는다 // 참고 있는 꽃이 꽃을 더 예민하게 한다면 / 피골이 상접한 저 금욕을 이해하리라…꽃이 피면 죽는 게 아니라 / 죽음까지가 꽃이다 // 억누른 꽃이 숲을 들어올리고 있다 / 생의 끝 간 데까지 뻗어올린 마디 위에서 팡 터져 나오는 대꽃” (‘대꽃’ 일부)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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