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1 2 4 44 TU P/TP 00S0 00M0 34 55 36 S 66 38 M L 94 S/P 96 98...
● 수수께끼 하나.
연관성을 찾기 어려운 숫자와 문자의 나열. 전시에 쓰는 암호 같기도 하고 통계학의 난수표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것들의 정체가 뭘까?
백화점 여성 의류 매장에 그 해답이 있다. 다양한 제품들만큼 치수를 나타내는 규격 역시 브랜드마다 천차만별인 시대. 정답은 ‘브랜드 별로 다른 치수 규격들’이다.
23일 서울의 한 백화점에 입점한 여성의류 브랜드 중 취재에 응한 12곳의 규격표를 비교해봤더니 단 3곳만 공통된 규격을 사용하고 있었고 나머지 9곳은 모두 달랐다. ‘0 1 2 3 4’와 같은 고유번호나 유로(Euro)사이즈인 ‘34 36 38’, 또는‘94 96 98’처럼 엉덩이 둘레(cm)만 표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00S0 00M0’나‘P/TP TU’는 어느 정도 사이즈인지 짐작조차 하기 힘든 경우다. 브랜드마다 치수의 기준이 다르다 보니 ‘S M L’이나 ‘85 90 95’사이즈에 익숙한 고객들은 당황스럽기 마련. 점원의 도움 없이는 어떤 사이즈를 입어야 할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일부 매장의 경우 암호처럼 쓰인 숫자나 문자의 의미를 모르기는 점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유럽 브랜드인 J 매장의 한 점원은 " S M L 사이즈에 맞는 우리 브랜드의 치수를 기억해서 고객에게 안내한다”며 “그 숫자가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본사에 문의 해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얼마 후 본사로부터 제품에 표시된 숫자가 엉덩이 둘레(cm)라는 사실을 알아내는데 까지는 몇 단계의 통화 과정을 거쳐야 했다. 또 다른 유럽 브랜드 T 는 수입업체 본사에서마저 ‘P/TP’라는 치수의 정확한 의미 대신 ‘Petit(small)/Tres Petit(very small)’를 뜻하는 프랑스어의 약자일 것이라는 추측만 보내왔다.
● 수수께끼 둘. 왜 불편하고 혼란스러운 ‘나홀로 규격’을 고집하는가?
날씬한 몸매에 대한 강박 관념과 주위 시선에 대한 의식, 이러한 고객들의 욕구를 좇는 업계의 상술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일부 유럽 브랜드의 경우 자신의 사이즈 노출을 꺼리는 고객들을 위해 아예 치수표시를 하지 않거나 암호를 사용하기도 한다. 패션 디자이너 양모씨는 “자신의 몸에 맞는 M 사이즈의 옷을 구입하면서 규격표는 S로 바꿔달라고 요구하는 고객들도 있다”며 “작은 사이즈의 옷을 입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소규모 의류 브랜드의 경우 같은 S 사이즈라도 약간 크게 제작해서 고객들을 만족시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 수수께끼 셋. 치수규격에 대한 국내 기준은 없나?
산업자원부 산하 국가기술 표준원은 2009년 12월 개정한 ‘KS의류치수규격’을 따라 제품 사이즈를 표시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KS의류치수규격에 따르면 성인여성 의류의 경우 상의와 하의, 케주얼과 정장 등 옷 종류에 따라 가슴, 허리, 엉덩이 둘레 및 신장을 센티미터(cm)로 표시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어기더라도 강제하거나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은 없다. 특히 규격표 마저 브랜드의 희소성이나 개성으로 연결시키는 수입의류의 경우 점원에게 일일이 물어보거나 조견표를 뒤지는 불편을 감수하며 제품을 구입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기술표준원 관계자는 “해외 브랜드의 경우 수입업체가 국내 기준에 맞는 규격을 태그나 스티커에 표시해 부착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유통 채널에 따라 제 각각인 치수 표기법을 정비하기 위해 KS의류치수규격을 개정할 예정이었으나 국제표준에 대한 일치 작업이 완료되지 않아 보류된 상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