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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린 배 채워주던 '생명의 땅', 미륵 세상 꿈꾸던 '희망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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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린 배 채워주던 '생명의 땅', 미륵 세상 꿈꾸던 '희망의 땅'

입력
2014.09.23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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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골제 앞, 지평선전망대에 오르면 광활한 김제의 들판을 볼 수 있다. 누렇게 벼가 익어가는 들판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것’이 아닌데도 이렇게 마음 넉넉하다.
벽골제 앞, 지평선전망대에 오르면 광활한 김제의 들판을 볼 수 있다. 누렇게 벼가 익어가는 들판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것’이 아닌데도 이렇게 마음 넉넉하다.

그때 그랬다. 형편 녹록지 않아 생계 아득할 때도, 쌀 한 가마니 집에 들여놓으면 어머니는 늘 ‘든든하다’했다. 벼가 익어가는 누런 들판의 정서가 이런 거다. 보릿고개 같은 세상살이로 조급해진 마음을 시나브로 누그러뜨리고 넉넉하게 만드는… 전북 김제로 간다. 가서 들판을 가슴에 품는다. 사는 것 좀 고되다 싶을 때 이 풍요한 풍경 떠올리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고즈넉한 산사에 들어 가을 볕 곱게 내려앉은 마당도 거닌다. 헛헛한 마음 채워줄 것들이 이 땅에 이리도 가득하다.

● 벼 누렇게 익어가는 광활한 들녘

눈 돌리는 곳마다 들판, 특히 부량면 벽골제 주변이 드넓고, 광활면과 진봉면의 들판도 광활하다. 그 유명한 벽골제에서는 들판 바라보며 제방 따라 걸어본다. 초록 들판이 금빛으로 물들어간다. 바람 선선하고, 갈대도 만개할 채비를 마쳤다. 농부들 애써 일군 땅을 응시하면 도시생활에서 생긴 체증이 단번에 내려가니, 농부가 보살피려 한 것이 비단 논밭뿐만 아니었다. 그의 수고가 이방인의 먹먹한 마음을 치유하니, 농부도, 드넓은 대지도 명의(名醫) 중에 명의다.

벽골제는 백제시대(330년)에 만들어진 저수지다. 우리나라 저수지 가운데 가장 오래 됐다. 축조 당시 규모도 최대였다. 경남 밀양 수산제, 충북 제천 의림지보다도 훨씬 컸다. 둘레가 약 40km, 제방 길이가 약 3.3km에 달했단다. 이거 만드는데 연인원 30여만명이 동원됐다. 하천과 수문공사까지 따지면 이 수는 더 늘어난다. 만경(김제 만경읍), 부령(부안), 고부(정읍), 인의(신태인) 등 주변 고을이 여기서 농업용수 받아 사용했다. 제방 너머 보이는 들판은 원래 고요하고 끝없는 ‘호수’였던 셈이다. 여기에다 청룡과 백룡의 전설까지 한 자락 걸쳤으니 상상하면 신비하고 신령스럽기까지 하다. 제방 아래 거대한 쌍용 조형물이 전설의 주인공들이다. 한 마리 몸통 직경이 2m, 높이가 15m, 길이가 54m에 이른다. 웅장한 규모와 생동감 넘치는 몸놀림을 감상한다. 야간에 조명 들어오면 더 ‘진짜’ 같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간선수로 공사와 섬진강댐 건설 등으로 벽골제는 메워져 논이 됐다. 저수지는 속절없이 사라졌지만 평야는 여전히 드넓다. 신형순 김제시청 축제팀장은 “금만평야, 호남평야, 김제평야, 만경평야 등 한번쯤 들어봤을 평야가 대부분 김제에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 전체 쌀 생산량의 40분의 1이 이 땅에서 난다”고 덧붙였다. 강원도 전체 쌀 생산량과 맞먹는 수치다. 조선후기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는 이런 김제의 들판을 보고 ‘생명의 땅’이라며 경배했다. 고정순 김제시문화관광해설사는 “산지(山地)가 70%나 되는 조선 땅에서 백성들 먹여 살리는 이 들판이 얼마나 고마웠으면 이마를 땅에 대고 엎드려 절까지 했을까”라며 되물었다.

진봉면 들판이 누렇게 물들어 간다.
진봉면 들판이 누렇게 물들어 간다.

이 질펀한 땅은 일제강점기 수탈의 중심이었다. 일본군은 이 땅에서 빼앗은 쌀을 인근 군산으로 옮겨 일본으로 빼돌렸다. 당시 김제만경평야를 중심으로 우리민족의 뼈아픈 수난사를 기록한 작품이 소설가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이다. 벽골제 인근에 이를 테마로 한 아리랑문학관이 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의 험난한 대장정을 좇다 보면 치열하고 고된 역사에 마음 먹먹하다. 문학관 옆은 국립김제청소년농업생명체험센터. 이 안에 지평선전망대 올라본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본 들판이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든다. 쌍용 조형물 뒤로 보이는 벽골제 제방을 찾아보고 모악산 아래까지 펼쳐진 들판도 구경한다. 바람 불 때마다 ‘생명’ 출렁이는 들판은, 내 것도 아닌데 마치 내 것 같아서 볼수록 든든하다. 벽골제 일대는 공원처럼 잘 조성돼 있다. 체험시설과 박물관 등 부대시설도 잘 갖춰졌다.

죽산면 메타세쿼이아 길. 코스모스까지 활짝 핀 이 길은 이미 가을 한복판이다.
죽산면 메타세쿼이아 길. 코스모스까지 활짝 핀 이 길은 이미 가을 한복판이다.

망해사전망대도 찾아가본다. 진봉면, 광활면 일대 들판이 아득하다. 진봉면 진봉산 중턱이다. 전망대 아래가 망해사다. 절 앞으로 만경강이 흘러 서해까지 간다. 이 풍경 운치 있어 물어물어 찾는 이들 제법 많은 백제시대 사찰이다. 유명세에 비해 규모 소박하니, 숨 고르며 쉬어갈 곳으로 모자람 없는 공간. 요즘은 물길 끝으로 새만금방조제도 보인다. 물새들의 몸짓이 가을처럼 우아하다. 고색창연한 낙서전과 우람한 팽나무는 구경한다. 조선시대 신통한 묘술과 기행으로 유명했던 진묵대사가 지은 전각과 나무다.

벽골제에서 망해사 갈 때는 죽산면 메타세쿼이아 길을 꼭 구경한다. 코스모스까지 활짝 핀 이 길에 가을이 무르익었다. 메타세쿼이아 길은 3km에 걸쳐 조성돼 있다. 여운 오래 갈 풍경이다.

금산사 미륵전의 위용이 당당하다. 외부는 3층인데, 내부는 단층 구조인 독특한 목조형식 가람이다.
금산사 미륵전의 위용이 당당하다. 외부는 3층인데, 내부는 단층 구조인 독특한 목조형식 가람이다.

● 미륵의 땅에서 희망을 구하다

어수선한 마음은 금산사에서 달랜다. 금산면 모악산 기슭이다. 백제시대 지어졌고, 신라 때 진표율사가 중창한 사찰이다. 후백제의 왕 견훤은 아들에 의해 이곳에 유폐됐다고 전한다. 일주문 뒤로하고 자태 고운 꽃무릇 지나 팽나무, 갈참나무 울창한 길을 따라간다. 경내로 들면 오른쪽에 불쑥 등장하는 웅장한 가람. 하늘로 솟은 미륵전이다. 금산사 미륵전은 독특한 형식으로 유명하다. 밖에서 보면 3층, 내부는 단층인 구조인데, 이런 형식의 목조건물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 안에 모신 불상(미륵장육삼존불)은 또 어찌나 거대한지 높이가 무려 11m가 넘는다. 전각 안에 있는 불상 중에 아시아에서 가장 크다니 잊지 말고 알현한다. 전부 진표율사가 중창 당시 조성한 것들이다.

금산사 미륵전 뒤에 꽃무릇이 활짝 피었다.
금산사 미륵전 뒤에 꽃무릇이 활짝 피었다.

이 거대한 미륵전과 불상 덕에 금산사는 미륵신앙의 근본도량이 됐다. 여기서부터 전국 방방곡곡으로 미륵신앙이 전파됐단다. 미륵이 어떤 보살인가.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후 56억7,000만년이 지나면 나타나 석가모니가 구제하지 못한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래의 부처다. 이러니 세상을 바꾸고 민중을 구제하려했던 이들은 ‘미륵의 땅’을 찾아 금산사가 있는 모악산으로 모여든다. 조선중기 사상가 정여립은 모악산 줄기 제비산에서 혁명을 꿈꿨고, 조선후기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전봉준도 모악산을 활동무대로 삼았다. 증산교를 창시한 강증산 역시 모악산을 무대로 활동했다. 각자의 종교가 무엇인지 대수일까. 이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매 한가지. 한창 어지러운 세상이라, 미륵의 힘을 빌려 희망을 구해본다. 미륵전 앞 산사나무는 갈라진 기둥에서 가지 뻗어 붉은 열매 주렁주렁 열었다. 미륵전 뒤 흙담에는 애틋한 사랑의 전설 간직한 꽃무릇이 곱게 피었다.

눈 크게 뜨면 흥미로운 것들 많은 금산사다. 지붕에 탑의 상단부가 얹힌 대장전, 사각형 이중기단으로 만들어진 방등계단 사리탑, 국내에서는 드물게 화강암이 아닌 점판암으로 만들어진 육각다층석탑, 높이 1.5m, 둘레가 10m에 이르는 거대한 석련대, 당간지주와 석등, 5층석탑 등 가치 있는 문화재들 많으니 천천히 둘러본다. 한 걸음 옮길 때 마다 시름 하나씩 떨어진다.

금산사 매표소 옆으로 난 등산로(모악산 마실길)를 따라 금산사로 가도 좋다. 나무 울창하고 산 중에 은밀하게 들어앉은 금산사를 멀리서 바라볼 수 있다.

고즈넉한 귀신사. 돌아올 '귀', 믿을 '신'자를 쓴다.
고즈넉한 귀신사. 돌아올 '귀', 믿을 '신'자를 쓴다.

금산사 인근 귀신사는 소설가 양귀자가 ‘숨은꽃’에서 ‘영원을 돌아다니다 지친 신이 쉬러 돌아오는 자리’라고 했던 곳이다. ‘돌아갈 귀(歸)’, ‘믿을 신(信)’을 써 떠난 믿음이 돌아온다는 의미란다. 귀신사는 신라시대의 사찰로 통일을 이룬 신라가 정복지역 교화를 위해 각 지방 중심지에 세운 화엄십찰 중 하나였다. 금산사를 말사로 거느릴 만큼 컸지만, 지금은 금산사의 말사가 돼 한갓진 사찰로 남았다. 고즈넉함 그 자체, 이러니 시간 나면 들른다. 대적광전 옆 여태 지지 않은 백일홍을 음미하고, 느티나무와 팽나무 사이로 난 돌계단을 올라 정갈한 석탑도 알현한다. 팽나무 아래 앉으면, 가을이 바람에 실려 온다.

● 여행메모

김제지평선축제가 10월 1일부터 5일까지 벽골제를 중심으로 한 김제시 일원에서 열린다. 한국 전통농경문화를 체험하는 행사들이 가득하다. ‘가장 큰 가래떡 태극기 만들기’를 비롯해 70여개의 프로그램이 선보인다. 특히 벽골제 제방에서 조명, 레이저, 불꽃놀이가 어우러지는 행사와 벽골제 설화에 등장하는 청룡과 백룡의 싸움을 횃불로 재현하는 행사는 놓치지 말아야할 프로그램이다. 황금들판을 달리는 마라톤 대회도 준비돼 있다. 기름진 김제평야에서 생산되는 ‘지평선 쌀’도 만날 수 있다. 김제지평선축제제전위원회 (063)540-3031

김제는 총체보리한우가 유명하다. 김제 평야에서 기른 보리를 발효시켜 먹인 한우인데 육질이 부드럽고 구운 후에도 잘 딱딱해지지 않는다. 부량면 벽골제 인근 지평선한우명품관(063-548-9595), 금산면 원평지평선한우(063-543-0076) 등이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곳. 특히 원평지평선한우의 한우육회비빔밥이 별미다. 진봉면 망해사 인근 심포항의 전망좋은 집(063-544-4471)은 꽃게요리가 맛있다.

서해안고속도로 서김제IC로 나가 국도 29호선을 이용하면 벽골제에 닿는다. 금산사를 먼저 가려면 호남고속도로 금산사IC로 나오면 가깝다.

김제=글ㆍ사진 김성환기자 spam001@hks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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