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국익 중에서 어느 것이 우선입니까?” 황우석 박사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을 다룬 영화 ‘제보자’를 관통하는 물음이다. 실제 사건의 제보자 ‘닥터K’가 MBC PD수첩 한학수 PD와의 첫 만남에서 던진 이 질문은 영화 속 제보자 심민호(유연석)와 PD 윤민철(박해일)의 만남에서 고스란히 재연됐고, 윤 PD가 취재ㆍ보도를 주저하는 방송사 간부들을 설득하는 과정에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10월 2일 개봉하는 이 영화를 볼 관객들이, 생각의 결과 깊이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한번쯤 되짚어 볼 물음이기도 할 것이다.
▦ “야 인마, 진실이 곧 국익이지.” 윤 PD와 팀장, 국장은 격론 끝에 그렇게 의기투합하지만 ‘줄기세포 신화’에 넋을 빼앗긴 국민 혹은 여론이 그들 앞을 막아 선다. 영화는 얼마간의 허구와 잔재미를 주는 튀지 않는 유머를 버무려 이 거대한 신화가 무너지는 과정을 속도감 있게 펼쳐 놓는다. 그러나 영화의 만듦새와는 별개로, 당시 사건을 취재한 기자에게는 솔직히 좀 밋밋하게 느껴졌다. 실제 드라마에선, 곡절 끝에 방송이 나가고 영화가 막을 내리는 그 지점에서, ‘허깨비 국익’과의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 실체도 없는 국익을 앞세워 진실을 억압한 건 ‘황빠’들만이 아니었다. ‘황우석 신화’ 만들기에 앞장섰던 대부분의 언론은 금과옥조처럼 읊어대던 ‘성역 없는 비판’ 정신을 내동댕이쳤고, PD수첩에 쏟아진 광기 어린 비난까지 ‘여론’으로 포장해 확대 재생산했다. 의혹 제기와 검증 요구에 ‘좌파’ 딱지를 붙여 매도한 한 보수지 논객의 칼럼 ‘보통 사람들에 대한 마녀사냥’은 몰상식과 비이성이 판친 당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 한학수 PD는 2006년 펴낸 취재록(개정판 진실, 그것을 믿었다)에서 “대한민국은 제보자 ‘닥터K’ 부부에게 큰 빚을 졌다”고 썼다. 그로부터 9년, 우리 사회는 얼마나 달라졌나. 지난해에야 실명이 공개된 ‘닥터K’ 류영준씨는 오랜 고통을 겪은 뒤 대학에 자리를 잡았지만, 양심을 따랐던 수많은 닥터K들이 왕따를 넘어 생존까지 위협 받는 현실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허깨비 국익’ 놀음도 여전하다. ‘진실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는 진실만이 오롯하다.
이희정 논설위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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