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시민들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개입하는 자국 정부를 비판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처음으로 열렸다.
외신에 따르면 시위대는 21일 오후 4시쯤 모스크바 시내 중심의 푸슈킨 광장에 모여들기 시작, 환상도로를 따라 도심 북동쪽의 사하로프 대로까지 약 2㎞를 행진하며 가두 시위를 한 뒤 저녁 6시30분쯤 해산했다. 이번 시위는 러시아 정부의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벌인 첫 번째 대정부 항의 시위였다. 러시아 국민 대부분은 그 동안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크림 병합과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반군 지원 등에 지지 의사를 밝혀왔다.
‘평화 행진’으로 명명된 이날 시위에는 자유주의 성향 정당 ‘야블로코’ 지도자 세르게이 미트로힌과 그리고리 야블린스키, 또 다른 야권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 등을 비롯한 시민 약 5,000명(경찰 추산)이 참가했다. 시위 주최 측은 참가자를 5만 명이라고 주장했다.
시위대는 “지난 4월부터 본격화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정부군과 분리주의 반군 간 교전에 러시아가 무력 개입해 사태를 키웠다”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서방은 러시아가 분리주의 반군에 병력과 무기 및 군사 장비를 지원했다고 주장하지만, 러시아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시위대는 푸른색과 노란색으로 된 우크라이나 국기와 ‘전쟁은 안 된다’, ‘푸틴은 거짓말을 그만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며 “우크라이나여, 우린 여러분과 함께 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시위대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을 철수하고 분리주의 반군에 대한 지원을 중단할 것과 군 당국이 군인들에게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전투에 참가하도록 강요한 사실에 대해 수사하고, 언론의 편파 보도 중단 등을 요구했다.
반전 시위대가 행진하는 동안 시위 현장 주변에는 일부 친정부 성향 시위대가 몰려와 ‘평화 행진은 나치 조력자들의 행진’이라고 외치며 야유를 퍼부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의 분리주의 세력이 자체 선포한 ‘도네츠크인민공화국’ 깃발이나 러시아 정교회 국기를 들고 나와 반정부 시위대를 향해 토마토와 계란, 신발 등을 던지기도 했다.
경찰이 두 진영을 갈라 놓아 큰 충돌은 없었으나 일부 구간에선 양측 지지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고함을 지르며 격렬히 논쟁하기도 했다. 경찰은 시위 구간 도로변을 따라 병력을 배치하고 주변에 수십 대의 경찰 버스와 자동차, 소방차, 응급차 등을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으나 별다른 사고는 없었다. 이날 반정부 시위는 모스크바 시당국으로부터 허가를 받고 진행됐다.
한편, 러시아 제2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에서도 이날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상태로 시민 약 1,000명이 모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에 반대하는 시위를 진행했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분리주의 반군은 5일 휴전에 합의한 후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논의 중이나 정전협정 체결 이후에도 소규모 교전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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