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밀어버리면 좋겠다… 몇 년 전 한 상가거리를 지나다가 이런 난폭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보습학원에 피부관리실, 호프집과 국밥집 등의 대문짝만한 간판들이 계통 없이 섞여 나 좀 봐달라고 으악으악 소리를 지르는 것 같은 풍경에 미간을 찌푸리면서였다. 안타깝기도 했다. 보기만 흉한 게 아니라 저렇게 내기하듯 간판을 키워봐야 서로 묻힐 뿐 눈에 띄지도 않을 텐데. 쾌청한 날씨였건만 공해와 소음이 따로 없었다. 배가 고팠지만 딱히 어느 식당에도 들어가고 싶지 않아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그러고 나서 얼마쯤 지난 후였을까, 곳곳에서 낡은 건물의 간판들이 일괄적으로 정비되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덥석 반가웠다. 악을 쓰는 간판들이 사라지니 그것만으로도 일대가 조용해진 것 같았다. 아담한 사이즈와 통일감을 고려한 글자체들이 제법 산뜻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또 재정비를 마친 상가를 지나칠 때마다 다른 미련이 앞선다. 이 무슨 변덕인지 단정하다기보다는 획일적이고 지루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비단 나만 그런 것은 아닌 듯하다. 난삽한 조악함이랄까 후줄근한 천박함이랄까 한국 상가건물의 독특한 아우라가 사라진 게 서운하다며 몇몇 친구들과 입을 모으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긴 미감은 그런 식으로 진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일단은 반듯한 정돈을 요구하며, 이단은 개성과 다양성을 요구하며, 또한 장소에 밴 숨결과 사연의 소중함을 깨달아가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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